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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冬至) / 정홍근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1/12/29 [06:24]

동지(冬至) / 정홍근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1/12/29 [06:24]

동지(冬至) / 정홍근

 

 

팥죽을 사러 간다

발간 백열등 아래 김을 모락거리며

시장통 좌판에서 마지막 뜸을 들이는

불그스름한 옛 기억을 사러 간다

 

나이 한 살 더 먹는 게 싫었을까

새알심만 남긴 채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면

할머니는 내 것까지 보태어 나이를 드시고

어느 겨울, 눈 덮인 산길로 걸어가셨다

 

하늘에서도 할머니는 팥죽을 쑤시는지

아침부터 둥그런 새알심이 하늘에 널리고

나이를 헛먹은 나는, 뒤늦게 팥죽을 사러 간다

 

가슴을 시원스레 뚫어 주던 동치미도

긴 긴 밤 할머니의 이야기 소리도 없지만

오늘, 팥죽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울 것이다

마지막 새알심 하나까지 남김없이 먹을 것이다

 

팥죽을 사러 간다

오랫동안 목에 걸렸던 그리움을 사러 간다

 

 

정홍근

 

시인, 작곡가,

한국사진문학협회 운영위원(기획국장),

계간 한국사진문학 시부문 신인상

제1회 한국사진문학상 최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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