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호수에 있는 백조 / 박지영

공직에 몸담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야기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2/02/26 [11:43]

호수에 있는 백조 / 박지영

공직에 몸담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야기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2/02/26 [11:43]

호수에 있는 백조 / 박지영

 

 

기초생활수급자 미세먼지 마스크 공문이 나한테 왔다. 기초생활수급자 관리가 내 업무였다. 기초생활수급자의 기만 들어가도 나에게 업무가 왔다. “기초생활수급자인데, 형광등에 불이 안 들어와요.” 기초생활수급자라고 밝히면 뒤에 어떤 첨언이 붙어도 나에게 민원전화를 돌렸다. 기초생활수급자 서류 신청을 하는 일이지만 관리라는 명목하에 기초생활수급자가 여행 가서 집에 남을 개를 어디 맡겨야 될지에 대한 고민까지 해야 했다. 다른 직원에게 어떤 일로 방문을 하면 기초생활수급자라고 하는 순간,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어떻게든 업무 담당자를 나를 엮을 수 있는 명분이 되었다. 노인에게 나눠주는 마스크 업무를 후원물품 담당자가 맡아서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주는 마스크 업무를 주사님이 맡아야 되는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딱 잘라 자기 업무 아니라고 했다. 노인 업무 담당자가 자기보다 선임이라는 이유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업무를 맡으면 단순히 그 일만 맡으면 되는 게 아니라 사업 시행에 물음표를 던지는 민원인이 찾아오고, 일을 조금이라도 그르치면 감사실에 불려 나갔다. 아무 탈 없이 일을 진행하면 조용히 넘어간 걸로 자축해야 했다. 경기 도중에 넘어지라는 기운 속에서 머리카락 한 올도 흘리지 않은 김연아 선수처럼 버티고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공백없이 입직을 했다. 신입사원이 오면 첫 번째로 오는 말이 몇 살이냐는 질문이겠다. 나이를 꺼내고 나면 혼자 나의 패를 보여줬다는 생각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40년을 일할 수 있는 거냐는 부러움이 담긴 소리를 들을 때면 잠깐 나 스스로에 취했다. 일자리가 없어 수도권으로 향하는 사람을 보면서 나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밥벌이를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터를 옮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에 따른 번거로움이 줄어든 셈이었다. 먹고 싶은 음식을 가격에 얽매이지 않고 먹는다는 것은 소중했다. 이것은 공무원의 장점이겠다.

관공서에 들어가자 밖에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 눈에 보였다. 조직의 부당함은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기 때문에 뉴스에서 좋은 점만 부각된다. 편하게 놀고 먹네라는 댓글은 덤이었다. 코로나 일선에서 선별진료소 직원이 추운 바람을 맞으며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있었다. 보건소에 일하는 직원뿐만 아니라 본인 업무를 놔두고 차출되는 직원, 떠난 사람의 빈자리를 매꿔야 하는 사람, 대행을 하면서 담당자가 아니면 놓치게 되는 일에 대한 견책을 당하는 등 눈덩이처럼 쌓인 가시 같은 존재들은 남은 40년이 그리 평탄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여준다. 그래도 사회복지를 한다고 하면 세상을 등진 사회복지공무원 일을 꺼내면서 힘든 일을 한다고 심심찮은 위로를 받았다. 예전에는 공직에 몸담고 있으면 일반 사람에게 좋은 말 듣기 힘든 게 사실이었다. 먼저 떠나간 이름 모를 동료에게 주위의 시선을 바뀌게 해서 고마워야 해야 할지, 넋두리로 모순이었다.

본연의 업무에서 코로나 지원금 업무, 선거 차출에 대한 업무, 보건소 파견 가서 역학조사 하는 업무를 더하면 분장표는 한 장으로 끝나지 못한다. 늘어나는 업무에 대해 이건 니 일이다, 이건 우리 소관이 아니다는 업무 싸움을 하는 주무님, 업무를 던져놓고 모르쇠 하는 총무과.사회복지 일만 하고 싶지만, 법정 사무 업무가 아닌 일들이 버젓이 존재했다. 민원인이 오면 얼굴 쳐다보면서 상담을 해야 하는 데 모니터에서 눈을 떼기 힘든 실정이었다. 학교에서 내담자의 말에 공감하고 수용하라고 배웠지만 꿈같은 말이었다. 사무실에 앉아서 조용하게 일하는 상상과는 거리가 멀다. 강 위에서 떠다니면서 물속은 치열하게 물 바퀴를 치는 백조였다.

휴직이나 퇴사를 하는 직원을 보면서 손에서 놓으면 편할 것이다. 고비를 넘는다는 게 고통의 순간이었다. 내가 없어도 다른 누군가가 채워서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간혹 내가 저평가 받을 때가 있어도 그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했다. 승진 순위에 밀리는 것은 인생에서 밀리는 게 아니었다. 직장이 삶의 전부가 아니었다. 힘들게 들어간 곳은 맞지만, 이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련을 주지만 나를 송두리째 흔들지 못한다. 늘 달을 보면서 퇴근했던 먼저 떠나간 보건소 주사님에 대해 묵념을 하며 오늘 하루를 보낸다.

 

 

 

박지영

부산 동구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