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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발자국을 포개며 / 박일례

김성미 기자 | 기사입력 2022/05/25 [06:04]

엄마 발자국을 포개며 / 박일례

김성미 기자 | 입력 : 2022/05/25 [06:04]

엄마 발자국을 포개며 / 박일례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낯선 엄마가 잔잔한 꽃송이 이불 아래에 누워 있었다. 도드라진 광대뼈, 움푹 파인 볼, 손은 삭정이다.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고 숨소리만 쌕쌕 들렸다. 자꾸 불러 봐도 어느 한 곳도 반응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 곁에 섬처럼 앉아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약봉지가 창턱에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엄마는 여럿이 지내는 생활을 힘들어했다. 혼자 지낼 수 있는 곳을 찾아온 요양원이다. 나는 엄마 침대 아래 바닥에서 새우잠을 잤다. 있는 내내 눈빛도 주고받지 못하고, 손도 잡지 못했다.

 

돌아온 이틀 뒤 새벽, 휴대폰 진동에 소스라치게 놀라 전화를 받았다.

 

돌아가신 걸 지금에야… 새벽 세 시쯤 돌아가신 것 같아요.”

 

요양원 원장 목소리가 다급했다. 아무도 부르지 않고 혼자 나무새를 타고 훌쩍 떠났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엄마는 하얀 국화에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서러움이 북받쳐 영정 아래 엎드려 목을 놓아 울었다.

 

엄마의 팔십육 년은 잿빛 길이었다.

 

다음 해 봄날, 부모님 무덤가에 제비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저세상에서는 제비꽃 무리처럼 어울리며 지내시는 걸까? 반갑고 고마웠다. 나는 엄마 뼛가루가 묻힌 곳에 손을 얹고, 혼자 중얼거렸다.

 

엄마! 손잡아 드리지 못해 미안해요!”

 

살면서는 이해하지 못한 것들이 엄마가 떠난 후에야 깨닫게 되는 모순이 가슴을 찔렀다. 나는 지금 엄마의 발자국을 밟고 뒤따라간다.

 

이랬구나. 이래서 그랬구나.’

 

이 나이가 되고서야 고개를 주억거린다.

 

엄마의 모든 것이 내 가슴을 뜨겁게 한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닿을 수 없는 경지다. 그동안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모르면서 깝죽대었다.

 

길이 얼었다고 길이 젖었다고 오지 말라고 했을 때, 눈치채야 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내 아이들이 나를 똑같은 태도로 대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나중에 나처럼 죄책감 갖지 않게 내가 변해야 한다. 자식 바라기가 되지 말자. 내가 웃으며 살다 보면 자식 어깨도 누르지 않을 것이다.

 

관계는 가벼워야 가까이하고 싶어진다니까.

 

 

박일례 시인

한국사진문학협회 정회원

제3회 계간 「한국사진문학」 신인문학상

2022 한국사진문학협회 신춘 디카시 전국대전 입선

2022 한국사진문학협회 신춘 온라인 백일장 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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