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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발이 그리운 이유 / 방성식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1/05/28 [15:35]

그녀의 발이 그리운 이유 / 방성식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1/05/28 [15:35]

 그녀의 발이 그리운 이유 / 방성식 

 

스스로를 스토커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녀가 날 신고하진 않을 테니까. 그저, 너무나도 그리웠을 뿐이다.

 
그녀의 방은 원룸촌 빌라 오층이었다. 늦은 밤까지 건물 앞을 서성였다. 휘도가 낮은 형광등은 재래식 가스등만큼이나 시퍼랬다. 커튼에 가려진 유리창을 올려다 보며, 한때 나의 것이나 다름없었던 그녀의 일상을 되새겨보았다. 창문에 불이 꺼지는 걸 확인하기 전까진 발걸음을 돌릴 수가 없었다. 

 
이별을 말하는 눈동자는 고요했다. 포기하고 떠나길 기다리는 조용한 시선이었다. 그녀는 우리가 만나선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조근조근 설명했다.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들 뿐이었다. 어찌할 바 몰라 그냥 앉아만 있었더니, 참다 못해 먼저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모르는 것이 턱없이 많던 난, 어른스런 이별을 할 마지막 기회마저 놓치고 말았다. 

 
얼마 전, 그녀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함께 그녀의 수업을 들었던 친구로부터였다. 녀석은 언제나 내게 묘한 라이벌 의식을 보였는데, 학교 성적, 모의고사 점수, 체력장 등급과, 입대와 복학 시기 등등 별 쓸데없는 것에까지 경쟁심을 보였다. 이번에도 알고는 있었냐는 질문으로 속을 떠보려 했다. 금시초문이었지만, 짐작은 하고 있었다는 거짓말로 얼버무려야 했다.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해."

 
내가 할 말을 지가 먼저 하고 지랄이었다. 겉으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잘 된 일은 잘 된 일이니까. 내가 군대를 기다려준 세 번째 남자라며 속없이 웃던 그녀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이 일전의 전 남친 두 명만큼 특별하다는 말인지, 혹은 별다를 것 없는 남자란 뜻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선생님이 결혼하는 남자, 어떤 사람인지 알아?"

 
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이번엔 솔직하게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프로필 사진이라도 바꾸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녀의 메신저는 삼 년 전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상태였다. 청록빛 바다가 파도치는 해변과 물에 반쯤 잠겨있는 하얀 발, 군대에서 포상 휴가를 나왔을 적 함께 우도에 가서 찍은 사진이었다. 

 
원래 그 사진엔 내 발도 나란히 찍혀 있었다. 전투화에 쓸려 거무튀튀해진 내 것에 비하면, 그녀의 발은 갓 태어난 아기의 것만큼이나 말랑말랑하고 싱그러웠다. 프로필을 발 사진으로 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타박에, 그녀는 남 얘기하듯 답했다.

 
"같이 찍은 사진 올리면 네가 조카나 사촌 동생인 줄 알 테니까."

 
나와 이별한 후, 그녀는 이미지를 잘라 자신의 발이 찍힌 부분만을 남겼다. 확대해서 자세히 보면 아직도 내 새끼발가락의 일부가 구석에 남아있었다. 딱 그만큼이라도 나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기를 소망했었다.

 
별로 관심이 없다는 말에도, 녀석은 예비신랑의 신상을 줄줄 읊어줬다. 나이는 몇이고 직장은 어디고 시부모님이 집은 어디에 해줬고, 이사는 언제 가기로 했는지, 자신은 결혼식 초대도 받았다며 떠벌렸다. 그녀를 빼앗아간 사람이라도 되는 듯 의기양양한 태도였다. 

 
몇 주가 더 지나고, 그녀의 메신저 사진이 바뀌었음을 알게 됐다. 밀짚 방갈로 저편으로 이렇게 투명해도 되나 싶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선생님은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과 손잡고 서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얼굴과 전신이었다.

 
그날 밤, 난 이젠 다른 사람이 살고 있을 원룸 앞에서 밤을 지새웠다. 이 동네에 찾아오는 마지막 날이다. 이곳은 이미 내가 있어선 안 되는 장소였다. 그녀와는 달리, 다른 주민들에겐 불청객을 선처할 이유가 전혀 없으니 말이다.

 
분리수거함 앞에서 그녀가 버리고 간 물건을 발견했다. 옷과 가구, 오래되고 뚱뚱한 텔레비전, 대부분 내가 아는 낯익은 것들이었다. 삼년 전 그날 해변에 신고 갔던 스포츠 샌들도 헌옷수거함 옆 구석에 널브러져 있었다.

 

사이즈가 익숙한 신발을 들어 가슴에 품었다. 그녀를 안았을 때의 온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하얗게 빛나던 그녀의 작은 발이 영원히 나이 먹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서 만큼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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