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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원(薔薇園)에서 / 이덕대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4/06/12 [15:50]

장미원(薔薇園)에서 / 이덕대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4/06/12 [15:50]

장미원(薔薇園)에서

 

이덕대

 

 

 이때쯤 산길이나 들길을 걸으면 형언하기 힘들 정도로 향기를 뿜는 꽃이 있다. 한국의 들장미이자 야생 장미인 찔레꽃이다. 대부분 흰 꽃을 피우나 곳에 따라 붉은 찔레도 있다. 찔레꽃은 지역마다 여러 전설을 간직한 꽃이다. 우리 선조들이 즐겨 입던 흰색 옷이나 전쟁 끝에 끌려가 돌아오지 못한 여인들의 한을 담은 이야기다. 숨이 막힐 정도로 고혹적이며 짙은 향기를 지닌 꽃이 한국의 장미 찔레꽃이다.

 아파트는 물론 인접한 학교 울타리가 온통 붉은 장미로 단장되어 있다. 성당의 성모 상에 바쳐진 순결과 숭고함 의미의 장미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현재의 삶을 낙관하거나 미래를 향한 희망을 이야기할 때 장밋빛이라는 말을 쓴다.

 차가운 철제 울타리를 감출 정도로 넉넉하고 촘촘히 벙글은 장미꽃 송이를 보는 느낌은 따뜻함을 넘어 흐뭇하기까지 하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나 청춘의 열정이 붉은 장미가 응원하는 것 같아 더욱 그렇다.

 

 향기의 계절이다. 봄이 끝나고 여름으로 넘어가면서 연초록 초목 사이에서 꽃들은 진한 향을 내뿜는다. 유전자를 이어가기 위한 존재감 표출이 매개곤충을 유혹하는 향기로 나타난다. 이즘의 꽃들은 대부분 향이 짙다. 찔레며 백합에 밤꽃 또한 그렇다. 

 무성한 잎들에 감추어져 곤충의 접근이 쉽지 않음을 꽃들은 알고 있다. 큐피드의 화살이 곧 향기다. 하지만 울타리에 핀 덩굴장미는 은은한 향에 고혹적인 붉은색이지만 날아드는 나비나 벌들을 보기는 어렵다. 오로지 인간을 위해 화려하고 탐스러운 꽃을 피우도록 육종된 장미는 곤충들에게 필요한 꿀이나 꽃가루를 충분히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장미꽃에는 사람을 기분 좋게 자극하는 향기를 지니고 있단다.

 지자체가 주관하는 장미축제가 여러 곳에 열린다. 이곳도 마찬가지다. 아파트가 숲을 이룬 삭막한 도심에 수만 송이 장미가 피어 바람에 하늘거리는 풍경은 장관이다. 바쁜 일상으로 자연의 꽃과 향을 즐기기 어려운 도시인들이 즐겨 찾는다.

 한 손에는 음료를 들고 또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추억사진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점심시간을 틈타 장미축제를 즐기는 직장인도 보인다. 색깔에 관계없이 멋지게 어우러진 장미를 보는 마음은 착잡하다.

 

 영국은 국화가 장미다. 15C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영국의 유력 가문이 30년간 내란을 벌였다. 바로 장미전쟁이다. 이들 두 가문은 붉은 장미와 흰 장미를 문장으로 썼다. 상대방 가문의 여성을 왕비로 받아들이면서 전쟁은 끝났고 결국 두 가지 장미를 합쳐 영국 왕실 문장이 되었으며 지금도 튜더 로즈를 사용하고 있다. 

 고대로부터 장미는 찬미 받고 추앙받는 꽃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에도 장미가 그려져 있으며 비너스와 함께 태어난 꽃이라고 찬양했다. 비너스가 사용하던 비에 젖은 베일을 들장미 위에 걸쳐 놓았더니 비너스의 순결이 옮겨져 순백의 백장미가 탄생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자료를 찾아보면 영국 더 타임스(1951.10.1일자)에 실린 <War and Peace in Korea>라는 제목에 “It would be more reasonable to expect to find roses growing on a garbage heap than a healthy democracy rising out of the ruins of Korea”라는 기사가 있다.

 새로운 국회가 개원된다. 우리도 붉은 장미와 흰 장미가 만들어내는 풍경처럼 오로지 국민을 위해 양당이 머리를 맞대는 국회상을 기대하는 것은 아직도 욕심일까. 장밋빛 미래까지는 아니라도 색깔에 관계없이 사람의 향기로 어우러진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서민의 소박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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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대

공군사관학교 졸업 및 공군대령 예편

경남일보 칼럼니스트(2018~현재)

김포문학상 수필부문 신인상(2017)

한국수필 신인상(2021)

한국수필 올해의 좋은 수필 10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선정(2023)

한국수필가 협회 및 김포문협 회원

 

에세이집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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