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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움의 안타까움 / 이덕대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4/07/30 [20:24]

가벼움의 안타까움 / 이덕대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4/07/30 [20:24]

가벼움의 안타까움 

 

이덕대

 

 

   삼복더위가 장난이 아니다. 자전거포라고 써 붙인 가게 앞마당은 어제 낮 뜨겁던 지열이 아직 식지 않은 모양이다. 오늘은 장날인가 보다. 장터 가는 길이 왁자하다. 어미소가 송아지를 찾는지 울음소리 처량하다. 끌려가는 송아지는 주인이 이끄는 대로 묵묵히 걷는다. 커다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멈칫거리기도 한다. 울음 대신 바튼 숨소리 사이로 목이 멘듯한 칭얼거림을 내뱉는다. 태어나고 자란 집을 떠나는 것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아프고 상처가 오래 남는 일이다.

 자전거포 뒷마당에 쭈그려앉아 찌그러진 바퀴를 고임 틀에 걸고 나사를 죈다. 풀림 공구로 바큇살을 하나하나 플고 새 살로 갈아낀다. 휘어졌던 바퀴가 다시 균형 잡힌 둥근 모양으로 바뀐다. 햇살이 퍼지기 전인데 온몸이 땀범벅이다. 실 구멍이 난 튜브에 펌프질로 바람을 잔뜩 넣고 물을 가득 담은 세숫대야에 담가 살핀다. 공기 방울이 수면 위로 뽀글뽀글 올라온다. 천으로 물기를 닦고 볼펜으로 구멍 난 곳을 표시한다. 강철로 만든 줄을 이용하여 그곳을 조심스럽게 긁는다. 흠집과 함께 고무 재질의 새살이 드러난다. 접착제를 칠한 후 헌 튜브를 오려 붙여 구멍을 때운다. 수리한 바퀴를 조립한다. 윤활유를 듬뿍 바른 후 바퀴를 돌려본다.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자전거가 살아난다.

 

  중학교를 졸업 후 방황 시절이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친구네 자전거포에 견습공으로 들어갔다. 일은 단순했다. 수리가 필요한 자전거가 들어오면 세척제로 깨끗이 닦는 것이 맡겨진 일이었다. 나이가 좀 든 기술자 아저씨는 옴팡진 가납사니였다. 왜 아니 그러겠는가. 일없이 장날마다 들러 되지도 않은 시비를 걸고 가는 주인 양반 친구들을 응대하는 것도 그렇지만 험하게 고장 난 자전거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 듯했다. 기술자가 대접받던 세상이 아니었다.

 아저씨가 일하는 의자 곁에는 나이를 먹어 쥐도 못 잡는 늙은 고양이가 시르죽은 듯 늘 볕 쪼이기를 했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생선 대가리며 고깃덩어리를 말없이 먹이는 것으로 보아 겉보기와는 달리 아저씨는 듬쑥한 사람이었다. 자전거 수리 요령을 묻기라도 하면 곰살궂게 일러 주었다. 어깨너머 배운 눈치와 꼼꼼히 가르쳐 준 아저씨 덕분에 수리소 들어간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용접 등의 고난도 기술을 제외하곤 제법 그럴듯하게 자전거를 고쳤다. 견습공 시절이 길지는 못했다. 우연찮은 담임선생님의 방문과 설득으로 채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끝이 났다.

 

  그땐 자전거도 귀했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금수저였다. 페달을 밟으며 두 바퀴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학생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풍요한 삶을 누리기 시작하면서 쓸만한 상태의 자전거를 너무 가볍게 버린다. 아파트나 골목길을 가다 보면 주인 없는 자전거가 흉물스럽기도 하고 위험해 보이기도 하다. 자전거가 버려진 곳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철부지 시절에 맺어진 인연 탓인지 모르지만 쓸만한 자전거를 방치하는 사람들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소용의 끝에는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예전에 어른들은 쓰던 빗자루도 버리면 도깨비로 변한다며 소중히 다루었다. 매년 기록을 경신하며 찾아오는 폭염도 인간의 과한 욕망과 끝 간 데 없는 낭비가 주범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이 만든 것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으면 정성스레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꽃밭에 버려진 가벼움이 씁쓸하다. 자전거포 견습공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이덕대

* 공군사관학교 졸업 및 공군대령 예편

* 김포문학(2017) 및 한국수필(2021) 신인상

* 한국수필 2023 ‘올해의 좋은 수필10’ 선정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

* 수필집 출간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2023)>

  <내 마음 속 도서관(2024)>

* 시인투데이 작품상(2024)

  <한통속 감자꽃>

* 한국수필가협회 및 한국문인협회 김포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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