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침의 불편함
이덕대
폭염 속에서 예측 불가한 도깨비 폭우가 쏟아지는 날씨에 쓰레기 분리수거도 쉽지 않은 일이다. 빗물을 한껏 머금은 종이 상자들은 무겁고 지저분하다. 요즘 신축 아파트 단지는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수거할 수 있는 공간이 잘 확보되어 있다. 구축 아파트인 이곳은 주차장 한 곁을 이용하여 쓰레기를 모으고 정리한다. 각 가정에서 일주일마다 들고나오는 종이며 스티로폼 등 쓰레기양이 어마어마하다. 명절이라도 끼어 수거 기간이 연장되면 상상 초월의 양이 모인다. 모인 쓰레기를 정리하는 일은 경비하시는 분의 몫이다. 이곳 경비 아저씨는 두 분이다. 두 분 모두 새벽잠이 없을 나이대다. 한 분은 오랫동안 근무하셨고 또 한 분은 얼마 전에 새로 오셨다. 두 분이 교대로 하루걸러 하루씩 자리를 지킨다. 오래 근무하신 분은 키가 크고 깡마른 체형에 친절함이 조금 지나쳐 보인다. 오랫동안 지켜본 바 친절함은 가식이 아니라 그분 천성이다.
이곳에 오래 계신 분의 쓰레기 정리 기술은 가히 예술이다. 종이 상자에 붙어 있는 비닐이나 철심 종류를 꼼꼼하게 떼어낸다. 재활용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다. 맨 아랫단에는 비교적 튼튼한 원형 상자를 가지런히 쌓은 후 접은 상자들을 마치 벽돌쌓기라도 하듯 정성스레 쌓아 나간다. 월요일 아침이면 집게손이 달린 수집 차량이 무지막지하게 흩트리며 가져갈 텐데 기도라도 하는 자세로 정성스럽게 종이 성(城)을 쌓는 모습은 구도자처럼 보일 정도다. 자기 집 담장이라도 쌓듯 종이상자들을 정리하다가도 쓰레기를 가지고 나오는 주민을 보면 대뜸 빼앗아 분리를 한다. 그가 그러는 것에 대해 내심 불편해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개중에는 경비원이 당연히 쓰레기 분리수거 책임이 있다는 듯 떠맡기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분리할 쓰레기를 들고 나갈 때마다 달려와 자신이 하겠다는 키 큰 아저씨의 친절함이 한동안 고마웠지만 어느 때인가부터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쓰레기를 분리하는 날이 되면 어떤 분이 근무하는지 미리 살핀다. 가능하면 친절한 아저씨를 피하기 위함이다. 경비 일을 하신다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듯한 과잉 친절도 그렇지만 의당 경비원의 일인 것처럼 분리도 하지 않고 휙 던지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언짢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하고 수거통을 들고 쓰레기 분리수거장으로 간다. 이른 시간임에도 의외로 신입 경비원 아저씨 혼자 종이상자 쌓은 곳을 손질하고 있다가 지나가는 말처럼 투덜댄다. “모처럼 몇 시간 동안이나 정리하고 쌓았는데 누군지 잠깐 사이에 수백 권의 책을 버리면서 쌓은 박스가 다 무너져 버렸네. 오늘도 선임자에게 잔소리께나 듣게 생겼구먼. 귀찮더라도 무거운 책들을 버릴 때는 관리실에서 매일 홍보하는 것처럼 묶어서 가지고 오면 좀 좋아?” 아무리 사소한 것도 꼼꼼함 그 자체처럼 일하는 선임자 탓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모양이다. “비도 오는데 젖은 책들을 그렇게 가지런히 쌓는다고 애를 쓰실 필요가 있나요. 곧 쓰레기차에 아무렇게나 실려 갈 텐데” “그래도 안 그래요. 이 나이에 잔소리 듣는 것도 한두 번이지” 갑자기 장자(莊子) <사람 사는 세상> 편의 사당(祠堂) 나무 이야기가 떠올랐다. 쓸모없음을 쓸모로 바꾸는 지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나친 겸손은 분명 불편한데 누구에게도 쉽게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이덕대 * 공군사관학교 졸업 및 공군대령 예편 * 김포문학(2017) 및 한국수필(2021) 신인상 * 한국수필 2023 ‘올해의 좋은 수필10’ 선정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 * 수필집 출간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2023)> <내 마음 속 도서관(2024)> * 시인투데이 작품상(2024) <한통속 감자꽃> * 한국수필가협회 및 한국문인협회 김포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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