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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국수 서사 / 이덕대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4/09/19 [13:13]

막국수 서사 / 이덕대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4/09/19 [13:13]

막국수 서사

 

이덕대

 

 

  우리의 전통음식에는 서사(敍事)가 있는 것이 꽤 있다. 도루묵이며 숙주나물이 그렇고 곤쟁이젓 또한 마찬가지다. 막국수도 유래가 있다. 막국수는 강원도 전통음식으로 원래 메밀국수를 김칫 국물에 말아먹는 음식이다. 왜 막국수인가 하는 데는 몇 가지 설이 있다. 메밀껍질 등을 함께 거칠게 막 갈아 만든다는 것과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만들어 내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지만 막노동이나 막걸리에서 보듯 막이란 접두어가 붙는 서민들의 음식이라는 설에 동의하고 싶다.

 강원도 막국수가 산골의 가난한 서민들 애환이 담겨있는 인고와 배고픔의 음식임은 분명하다. 그중에 춘천막국수가 유명해진 것은 왜병의 명성황후 시해 사건인 을미사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8도 의병장이던 의암 유인석 장군 등 춘천의 유생을 중심으로 의병운동이 펼쳐지고 가족들은 일본 진압군을 피해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 화전을 일구며 메밀이나 감자 등으로 연명했다 한다. 의병들이 화승총과 화약을 구하기 위하여 화전민 가족들은 감자나 메밀을 도시에 내다 팔았는데 이때부터 메밀을 재료로 한 막국수가 춘천에 성행하였다는 것이다. 막국수에는 독립을 위해 목숨 바쳤던 이 땅 백성의 아픈 역사가 묻어 있는 음식이다.

 

  춘천에서도 좀 알려졌다는 막국수 집을 찾는다. 불볕더위 유별났던 올여름도 무사히 넘겼다. 시원한 막국수를 먹기에 좋은 날씨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아니면 고물가에 불경기 탓인지 서민들 음식점에도 손님이 적다. 단순하고 질박한 막국수를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벽에 붙인 지나친 자랑 문구는 다소 뜨악하다. 메밀국수는 목이 미어져라 밀어 넣듯 먹어야 제대로 맛을 느낄 수 있다. 겨울철 긴긴밤 허기진 배를 채우려면 한 번을 먹더라도 숨이 막히듯 먹어야 먹는 느낌이 온다.

 첫 맛은 조금 실망이다. 요즘 식당 음식 대부분이 그렇듯 달고 매운맛이 막국수 특유의 구수함과 담백함이 어우러지는 맛을 가려버렸다. 메밀국수는 시원한 동치미나 열무 김칫 국물에 말아먹는 음식이다. 시큼하고 새콤한 동치미나 열무김치 국물에 꼭 더한다면 들기름을 가볍게 두르고 먹어야 담백한 메밀 맛을 즐길 수 있다.

 그런 고유의 메밀국수 맛을 기대했지만 달랐다. 짜고 달고 매운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젊은 도시 손님의 입맛에 맞추려다 보니 유명 막국수 집도 어쩔 수 없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면발도 유난히 하얗고 부드러워 순 메밀로 만들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메밀껍질은 식용할 수 없기 때문에 식약처 지침에 따라 알갱이만으로 국수를 만들었다는 식탁 위 설명문을 보고 조금 황당했다.

 

 고유의 담백함과 무슴슴한 맛이 일품인 막국수는 아니었지만 허기가 반찬이라고 곱빼기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세상이 바뀌는데 전통음식이라고 그대로일 수는 없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쯤 보니 나이깨나 있어 보이는 사람들도 자리에 앉아 음식을 시키는 것으로 보아 단골손님도 제법 있는 듯하다.

 긴 세월 함께 한 손님이 지금도 그 맛을 잊지 않고 찾으니 훌륭한 맛집임이 분명한데 입맛이 유별나서 그렇다는 생각을 하며 식당 문을 나선다. 세상이 다 변해도 서사가 담긴 고유의 음식만은 전통대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

 



 

 

 

 

 

▲이덕대

공군사관학교 졸업 및 공군대령 예편

김포문학(2017) 및 한국수필(2021) 신인상

한국수필 2023 ‘올해의 좋은 수필10’ 선정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

수필집 출간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2023)>

  <내 마음 속 도서관(2024)>

시인투데이 작품상(2024)

  <한통속 감자꽃>

한국수필가협회 및 한국문인협회 김포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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