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스피노자의 「에티카」에 대하여 / 김석필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3/02/06 [13:57]

스피노자의 「에티카」에 대하여 / 김석필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3/02/06 [13:57]

스피노자의 에티카에 대하여

 

 

상봉중학교 김석필

 

 

오늘은 스피노자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당신은 스피노자를 아는가? 안다면 어디까지 아는가? 이 사람에 대해서 2차시 동안 수업을 해보았지만 이 사람의 주장엔 다른 덧붙일 것이 없는 근본 하나만이 있다.

바로 표현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표현은 먹고 마시고 행동하는 것이겠지만, 이 사람에게 표현은 신과 피조물과에 관계 살아 숨 쉬는 자연 그 중에서도 제일 으뜸인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신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우리 자체도 신이 되어 욕망을 표현하는 것이 삶의 존재 이유라고 한다. 그러나 이 욕망이 한도 끝도 없다면, 이것은 표현으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스피노자는 선과 악을 절대적 가치로 여기지 않았다. 우리는 다수가 욕구하고 지향하는 것을 선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즉 긍정성은 선이고 부정성은 악이다.' 그러나 나는 또 다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도에 휩쓸리듯이 욕구의 끝을 찾지만, 그것을 절제할 때 느끼는 안정감과 양심의 가책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욕망과 쾌락을 비관적로 본다거나 과도화 된 욕망일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글을 마치며 그의 생애에 대해 짤막하게 얘기하고 싶다. 그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그러나 같은 유대인들이 율법에 어긋나 말했다는 이유로 한 젊은이를 밟고 지나가는 것을 보자 충격을 받았고, 그 후 위와 같은 주장들을 펼치는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만약 그가 이러한 일을 겪지 않고 개방된 지역의 환경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는 인간의 존재와 방향성을 욕망에서 찾았을까? 나는 찾았을 거라 본다. 왜냐하면 스피노자 같은 사람들은 폐쇄된 환경일 경우 더더욱 해방의 탈출구를 찾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이 정도라도 표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17세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해상무역이 발달한 상업도시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감상]

철학자들의 예수라 불렸던 스피노자를 우리는 단순히 그가 남긴 나는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이 말 정도로 기억하고 있다. 이 글을 직역하면 바보 같은 짓이다. 하지만 어떠한 핍박과 억압에도 자신의 철학적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는 우회적 표현이다. 그의 대표 저서 에티카에서 소상히 밝히고 있다. 유대인임에도 유대교에 대해 아니 종교에 대해 바른말을 거침없이 표현한 바뤼흐 스피노자. 그의 윤리학을 김석필 학생은 신과 윤리 사이 인간은 어떤 점을 지향해야 하는지 학생의 눈높이에서 정리를 잘한 글이다. (지혜의숲 원장 손설강 시인)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글자람터 많이 본 기사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