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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고래 뚫는 날 / 이덕대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4/02/29 [12:36]

방고래 뚫는 날 / 이덕대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4/02/29 [12:36]

방고래 뚫는 날

 

이덕대

 

 

 정월대보름이 지나니 살바람이 굴뚝을 타고 앉는지 자꾸만 아궁이로 불길을 토해낸다. 이때쯤이면 으레 방고래 뚫는 사람들이 뚫어 징을 치면서 마을을 도는지 낯선 사람 경계하는 까치 소리 요란하다.

 굴뚝을 따라 지붕 위로 한가롭게 피어올라야 할 연기는 앞마당 낮게 깔리며 보기엔 오히려 푸근하고 따뜻한 정경이다. 안채 뒤란에 서있는 작은방 시멘트 굴뚝은 바람이 어떻게 불거나 말거나 양철로 만든 고깔모자를 얌전하게 둘러쓰고 있다.

 제법 차리고 사는 집에선 잘 다듬어진 돌과 황토를 번갈아 쌓아 굴뚝을 크게 만들기도 했지만 고래가 막히면 불땀 잘 안 드는 것은 마찬가지다. 자연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아궁이의 열기가 식고 나면 눈알이 생쥐 닮은 굴뚝새만 커다란 굴뚝 속을 자주 드나들었다.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우리의 난방법은 온돌 난방에서 공기 난방으로 현대화되었고, 초가지붕과 어우러진 전통 굴뚝도 우리 곁에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한옥의 형태가 양옥으로 바뀌고, 전통 난방인 온돌도 하나씩 없어지더니 정취 넘치는 그림을 만들어 내던 굴뚝의 생명도 다하게 되었지 싶다.

 긴 설이 지나고 뒷바람이 물러갈 때쯤이면 무시로 바람 방향이 바뀌고 돌개바람이 불면서 마을에 방고래 뚫어주는 전문가가 나타났다. 막히면 답답하고 뚫으면 환해지는 것이 세상 이치다. 머리에는 꾀죄죄한 북덕무명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지게에다 나지막한 나무 풍로를 진 방고래 뚫는 사람들은

 “화악 뚫어 줍니다. 안방, 작은방, 큰 방, 사랑방 방고래는 물론이요. 시집 못가 멍든 처녀 마음, 시앗 때문에 울화 맺힌 큰댁 속앓이, 술청에 사또 만나러 가 술 장군 지고 안 돌아온 영감탱이 땜에 속병 난 안방마님 속 구석(狗席)까지 확실히 뚫어 드립니다.” 하는 너스레를 떨며 마을을 돌아다녔다. 빈속에 막걸리 잔깨나 마신 탓으로 검붉어진 얼굴의 뚫어 양반을 따라다니는 아이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방고래 뚫을 때는 우선 아궁이에 생솔가지를 잔뜩 넣고 불을 붙인 다음, 불매라고 하던 나무 풍로를 가져와 아궁이에 대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풀무질을 해댔다. 그렇게 반 시간쯤 지나면 방고래는 물론 부넘기, 개자리에 매달려 있던 검댕이까지 타면서 굴뚝엔 검붉은 불빛이 솟아올랐다. 마무리는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갔다는 표정으로 마시던 막걸리 한 잔을 아궁이에 흩뿌리는 것이었다.

 방고래를 뚫는 날은 삼이웃이 연기와 재를 뒤집어쓰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얼굴에 검댕이를 뒤집어썼다. 방고래를 틔운 방은 한동안 불도 잘 들고 방은 뜨끈뜨끈했다.   허리 시원찮은 마을 어르신들은 등 찜질을 한다고 언죽번죽 찾아와 야단법석을 벌였다. 마치 동네잔치라도 만난 듯했다. 정겨운 것들이 많이 사라졌고 또 사라진다. 이제는 시골도 나무를 때는 집이 드물다. 따뜻함으로 다가오던 굴뚝이며 아궁이를 보기도 어렵다. 봄비 내리는 아침, 다락같이 오른 밥상물가로 서민들 마음 개자리에 우북수북 쌓인 검댕이도 싹 씻겨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덕대

공군사관학교 졸업 및 공군대령 예편

경남일보 칼럼니스트(2018~현재)

김포문학상 수필부문 신인상(2017)

한국수필 신인상(2021)

한국수필 올해의 좋은 수필 10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선정(2023)

한국수필가 협회 및 김포문협 회원

에세이집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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