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바바리 맨 박병태 / 예시원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1/05/19 [08:59]

바바리 맨 박병태 / 예시원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1/05/19 [08:59]

바바리 맨 박병태

 

예시원

 

직원들에게 겹겹이 에워 쌓인 채 주주총회장을 서둘러 빠져나온 박병태 사장은 노조원들이 던진 계란에 맞아 검은색 양복과 검정색 승용차가 온통 너저분하게 황칠갑이 되었다.

무책임한 박병태는 물러가라, 물러가라

부당한 매각협상 박살내자, 박살내자

서둘러 출발한 승용차 뒤로 계속해서 노조원들의 계란세례가 이어지고 구호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박병태는 줄줄 흘러내리는 계란을 닦지도 않은 채 질끈 눈을 감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박병태. 참으로 긴 세월동안 자동차 업계에 몸을 담으며 온갖 산전수전 공중전까치 다 겪은 백전노장이다. 기발한 발상으로 위기에 처한 자동차 회사들을 기사회생 시켜낸 경험이 많아서 사람들이 변태 같은 놈이라고 불렀고, 바바리를 걸친 채 중후한 모습으로 협상장에 자주 나타나 바바리 맨으로도 통했다. 그를 따라다닌 닉네임들은 대부분 조롱 섞인 칭찬의 말들이 많았다.

신참 시절 우리나라 굴지의 혼다자동차에서 사원부터 본부장까지 잔뼈가 굵었고, 그 후 쌍마자동차에 전격 스카우트 되어 사장으로 취임한 뒤 지금의 사태를 맞이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7년 전 중국 샹가이 자동차에 매각이 된 쌍마자동차는 그동안 여러 차례 구조조정과 경영혁신을 통해 겨우 기사회생이 되었다. 하지만 샹가이 자동차에서 엔진개발팀의 핵심기술 자료와 도면을 몽땅 가져가버렸고, 사실상 쌍마자동차는 빈껍데기 단순조립 공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샹가이 본사에서는 핵심기술을 중국으로 가져간 뒤 본색을 드러냈고, 쌍마자동차의 지분을 다시 매각한 뒤 사실상 경영권을 포기한 채 채권단에게 회사 운영권을 넘기고 말았다.

7년간의 뼈아픈 자구노력으로 겨우 힘겹게 밥 먹고 살던 쌍마자동차는, 기존 자동차 업계의 경쟁에서 신차와 신기술 개발에 뒤쳐져, 갈수록 동력을 상실한 채 무너지기 일보직전까지 오고 말았다.

샹가이 자동차에서 자금회수를 한 뒤 정부지원금과 채권단의 유예기간 덕분에 쌍마자동차 임직원들은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며 지내 왔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에 이르러 견딜 수 있는 임계점을 넘기고야 말았다.

박병태가 주주총회장에서 서둘러 빠져나오다 노조원들로부터 계란 세례를 받으며 수모를 당했던 것은, 혼다자동차 계열사인 기호자동차로부터 M&A 인수합병 제의를 받아 임시주총에서 그 의결을 긴급으로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사실상 쌍마자동차가 기호자동차로 매각이 되면 임직원들에겐 전화위복의 호재였지만, 모든 일엔 호사다마 같은 시샘과 방해공작이 따르기 마련이다. 혹시라도 후속절차로 있을지 모를 인적 구조조정의 위기감을 느낀 노조원들이, 불안감에서 집단반발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다.

새벽부터 비상연락을 받은 노조원들이 주주총회장 입구에 모여 농성을 벌였으나, 주총에서 전광석화 같은 벼락치기 의결과정을 저지하지 못한 허탈과 분노에 난리를 친 것이다.

, 노조원들이 저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에이 참 사람들 하곤. 지금 살고 봐야지 속내도 모르면서 난리를 치고 있어. 에유 참

그랬다. 더 이상 정부에서도 추가자금 지원을 해주지 못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받았고, 채권단에서도 기호자동차의 M&A 인수합병 전에 대대적인 인적 구조조정을 감행해야 한다고 강력한 주문이 들어왔었다.

혼다자동차에서 쌍마자동차로 이직을 한 박병태 사장은 오자마자 천둥벼락 같은 난리를 맞았고, 채권단으로부터 그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해 달라는 압박을 받고 있었다. 물론, 오기 전부터 쌍마자동차의 재무구조나 경영실태를 모르고 오진 않았지만, 막상 회사를 옮기고 실태파악에 나서면서 아연실색 기절초풍하고 말았다.

, 이거, 이거 완전히 엉망진창 개판이로구만. 재무구조도 그렇지만 완전히 알맹이 다 빠진 빈껍데기 공장과 직원들 외엔 아무 것도 없잖아. 샹가이 자동차에서 핵심기술도 다 빼갔고 중요 설비도 매각해버렸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자동차 회사가 돼버렸군. 큰일이네

회사가 그 지경인데도 노조에서는 아무 것도 모른 채 매년 임·단협 때마다 과도한 임금인상과 복지를 요구해왔다. 물론 그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미 지난 7년간 거의 임금동결에 가까운 상태로 지내왔고, 기본급에 가까운 임금으로 간신히 버텨왔던 직원들도 빠듯한 생활비를 충족하지 못했으니, 그 한계치에 이른 것이다.

협상장에서 박병태는 곤혹스러웠다. 어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회사의 실정이 노조에서 원하는 대로 들어줄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보이소 사장님, 우리도 회사에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지난 몇 년간 경영혁신이다 뭐다 해서 뻑 하면 인적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겁박해대서, 우리 조합에서도 매년 임금협상을 자제하고 회사 요구대로 다 들어줬다 아입니까?

신임 사장님은 이제 막 오셔가지고 실태를 잘 모르시겠지만, 그동안 우리도 엄청 힘 들었십니다. 인자는 도저히 배가 고파서 못 살겠십니더. 우째 이번에는 인상 좀 해주시고 그동안 밀렸던 수당들 좀 챙겨 주이소"

박병태는 회사 실정도 모르는 노조위원장과 간부들이 들이대는 요구에 뒷목이 뻣뻣해지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라왔다. 물론 직원들이 한계에 이른 건 알고 있었지만 현실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였다.

보소 위원장님, 내도 오늘은 넥구다이(넥타이) 풀어놓고 솔직하게 털어 놓을라요. 내만 한 번 들어 보소

박병태는 그동안 애써 점잖게 서울식 억양을 구사하던 걸 내려놓고 고향인 경상도의 진한 억양으로 들이댔다.

지금 내가 회사 살릴라꼬 온 천지사방으로 청와대다 여당이다 야당이다 쫒아 댕기고, 채권단 은행마다 발이 닳도록 다니면서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고 다니는데, 당신들 진짜 너무한 거 아인 교?”

노조위원장은 웃기지 마란 듯이 콧방귀를 끼고 의자에 삐딱하게 기대며 고개를 아래위로 좌우로 비틀어댔다.

그거는 사장님이 당연히 해야 될 역할 아인 교? 그런 책임감도 없이 우찌 사장 할 긴 교? 안 그렇십니꺼 사장님?”

보소 위원장님, 그 말도 틀린 말은 아인데, 지금 앞뒤 상황파악 좀 제대로 하고 협상합시더 으이

병태는 그동안 진행돼온 채권단과 정부로부터 강도 높은 자구책 마련 안을 제시하라는 요구를 일일이 목이 타 들어갈 정도로 설명해 주었다. 물론 경영임원들이나 간부직원들을 통해 설명해줘도 될 일이었지만, 이번엔 사장이 직접 설명해줘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던 것이다.

설명을 다 듣고 있던 노조위원장과 간부들은 침통한 표정이 돼갔다. 긴 침묵이 흘렀다. 병태는 착잡한 심정으로 협상 테이블에서 일어나 등을 돌리고 창밖을 바라보며 담배를 꺼내 피웠다. 벌써 두 개비 째다. 초조하게 사장의 다음 발언을 기다리던 위원장과 간부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서 최후통첩 하듯이 소리쳤다.

그라모 우리도 모르겠으이까네, 지금부터 모든 걸 사장님한테 다 위임할 테니 사장님이 책임 다 지소

드디어 노조는 회사에 백지위임을 해버렸다. 줄담배를 피워대던 박병태 사장은 어깨가 더 무거워짐을 느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야내가 와 이런 회사를 와 가꼬 이 고생을 하노?

 

다음날부터 병태는 더 발 빠르게 정부 여당과 야당 국회의원들을 만나고, 채권단 은행 간부들을 만나러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하지만, 채권단과 산업통상자원부 책임자들의 긴급회의가 있던 날에 그들은 박병태 사장에게 마지막 최후통첩을 날렸다.

우리도 심각하게 고민을 했고 밤늦게 회의를 통해 쌍마자동차 사태를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1안은 기호자동차의 M&A 인수합병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2안은 후속절차로 인도의 파갈로사의 외자유치를 적극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최종정리 후 쌍마자동차의 임직원들 중 40프로를 감원하는데 전원 일치로 찬성했으니, 박병태 사장께서 그 절차를 신속하게 마무리해줬으면 합니다. 모든 정리 절차가 완료된 다음에 박 사장님의 연임 건도 함께 긍정적인 검토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병태의 의견 따위는 들어보지도 않고 안중에도 없는 듯 일방적으로 통보만 하고 자리에서 서둘러 일어나려고 했다. 병태는 긴급하게 그들을 제지시키고 서둘러 밤새 마련한 제안서를 나누어 주며 다시 자리에 앉혔다.

자 자 잠깐만 시간을 좀 내 주십시오. 제가 밤새 잠 한숨 자지 않고 만든 제안서입니다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제안이니 긍정적으로 검토를 부탁합니다.”

그 제안서에는 채권단과 산자부의 1안과 2안을 받아들이되 3안에서 다른 의견을 제시해 놓았다.

지금까지 통보한 1안과 2안에 대해서는 저희 쌍마자동차 임직원들이 전부 수용하겠습니다. 다만 3안의 구조조정 건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해놨습니다. 채권단과 정부에서 검토했을 때도 전혀 무리 없는 긍정적인 안이니 검토 부탁합니다.”

병태가 밤새 잠 한숨 자지 않고 마련한 제안서에는 임직원 감원 40프로 대신 전체 임직원 전원 퇴직원과 신규입사지원서를 동시에 제출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노조에는 저희 임원과 간부들이 적극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서로 간에 신뢰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불안을 해소시켜 주는 게 선결과제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임직원들이 전원 퇴직함과 동시에 신규입사지원서를 제출하고 신규 1년차 직원이 되면서 새롭게 출발하는 것입니다. 노조에서는 분명히 회사에서 이렇게 해놓고 직원들을 선별적으로 자르는 게 아니냐며 반발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것 또한 저희들이 적극 납득할 수 있도록 이해시키겠습니다.”

회의장에 있던 채권단과 정부 관계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박병태에게 반문해왔다.

이러면 한꺼번에 그 많은 임직원들의 퇴직금과 이런저런 명목의 위로금 지급으로 엄청난 부담이 발생하는데, 그건 또 어떻게 감당하려고 합니까?”

박병태는 그것도 감안해서 계산에 포함했기에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번에 한번 털고 지나가면 채권단 은행과 기업에서도 앞으로 지급해줘야 할 장기근속 직원들의 이런저런 퇴직금과 각종 복지기금의 추가적인 부담을 미리 당겨서 중간 정리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물론 노조에서는 그러느니 퇴직금 중도정산이 낫지 않겠느냐는 반박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과 이것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상의 인적 구조조정 절차와 동일한 효과를 올릴 수 있고, 직원들로서는 고용안정이 되니 서로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박 사장님의 말씀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지금 그 회사의 노조는 금속노조 아닙니까? 그들의 상급단체와 동종업계인 자동차 산업에 종사하는 노조원들의 집단반발도 만만치 않을 건데 그건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건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노사협상에서 노조 측이 내게 모든 권한을 위임한 상태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추진만 하면 됩니다.”

박병태 사장은 밤새 잠 한숨 자지 못한 피로감 보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과 중압감으로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우리도 이 회의장에서 결정지을 수 없는 중대 사안이니 돌아가서 각 은행장님들과 의논해야 하고, 산자부에서도 회의를 거쳐 결정해야 하니 박 사장님께선 돌아가셔서 기다리고 계십시오.”

병태는 다 떠난 빈 회의장 테이블을 짚고 일어서다 어지러운 현기증을 느꼈다. 깊은 피로감과 함께 갑갑함이 몰려왔다. 휴게실에서 직원이 건네준 피로회복제 음료수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심호흡을 했다.

, 잘 돼야 할 텐데

병태는 그들이 회의장을 떠나기 전에 가지고 왔던 사임서를 앞에 놓고 가려고 했지만 등 뒤로 채권단 대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박 사장님이 가지고 계세요. 우린 못 본 걸로 할 테니까 끝까지 박 사장님이 책임 있고 소신 있게 해 보십시오.”

 

드디어 기다리던 소식이 왔다. 박병태가 제안한 3안에 추가로 전 직원 1인당 위로금 1,500만원씩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소모적인 노사협상의 과정을 생략하고 전격적으로 단행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노조에서 박병태 사장에게 모든 협상의 과정을 위임한 상태여서 문제될 것은 없었다.

드디어 주주총회의 의결을 거쳐 쌍마자동차와 기호자동차의 M&A 인수 협상과 후속 절차인 인도 파갈로사의 외자유치 승인 건, 임직원 인적 구조조정 안이 모두 일사천리로 통과되었다. 3안의 절차는 쌍마자동차의 임원진에서 수행해야 하는 책임이 돌아왔다.

어디서 정보를 들었는지 아침부터 주주총회장 앞을 장악하고 있던 노조원들의 거센 저항과 폭언이 날아든 건 당연했고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다.

이 변태 같은 병태가 어디서 지 마음대로 인적 구조조정 안에 찬성을 하고 있어? 이 자식이 말이야. 너를 믿고 위임해 줬는데 돌아오는 게 이거냐 이 자식아

요식행위에 불과한 퇴직원과 신규입사지원서 작성 절차는 후순위로 밀려났다. 즉시 회사와 은행에서 자동 계산된 모든 임직원들의 퇴직금과 위로금 1,500만원이 급여계좌로 입금되었다. 후속 절차로 퇴직원과 신규입사지원서를 제출하는 직원들에겐 500만원씩 추가지급이 되었다. 그러나 서류제출을 거부하는 직원들에겐 해고를 하겠다는 통보가 날아들었다.

물론 박병태 사장은 채권단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미리 알고 있었고, 노조 핵심간부들 일부도 정보공유를 하고 있었지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정리가 완료되면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사퇴하기로 했던 것이다.

회사에서도 박병태 사장에게 노조에서 협상 위임을 한 상황에서, 굳이 다시 노조와 협의하면서 에너지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아 통보하는 절차만 취했다.

그건 쌍마자동차를 M&A 인수·합병하는 기호자동차와 채권단에게 임직원 고용보장확약서를 미리 받아내면서 취했던 빅딜(big deal)이었다. ‘고용보장협의서고용보장확약서는 본질적으로 그 차이가 실로 엄청나게 컸다.

그건 MOU(양해각서)MOA(이행협약)의 실효성만큼이나 차이가 큰 것이다. 단순한 고용보장협의서M&A 인수합병 절차가 끝난 뒤 언제든지 휴지조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박병태 사장은 전 임직원들의 고용승계를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었고, 채권단 대표들과 기호자동차 경영진이 서명을 한 고용보장확약서를 변호사를 통해 법원에 공증까지 해 두었다.

주주총회장을 나서면서 노조원들의 계란투척을 받았던 박병태 사장은 입고 있던 양복과 승용차가 지저분해졌지만 마음만은 상쾌해졌다. 끝까지 책임을 완수했으니 이제 홀가분한 마음으로 쌍마자동차를 떠날 때가 됐다고 결심을 굳힌 것이다.

그 뒤 쌍마자동차를 인수한 기호자동차에서는 약속대로 추가적인 구조조정 절차를 밟지 않았다. 기호자동차의 신차 모델 생산라인을 쌍마자동차 공장에 새로 깔았고, 회사는 안정적으로 정상조업을 하게 되었다. 채권단과 노조에서조차 박병태를 다시 사장으로 연임시키자는 의견들이 많았지만 병태는 결단을 내렸다.

박병태 사장이 다시 걸음을 옮긴 곳은 만성적인 노사갈등의 골이 깊은 삼송자동차 현장이었다. 삼송자동차 역시 쌍마자동차처럼 신기술 개발이 타 자동차사에 비해 현저히 뒤쳐져 경쟁력이 떨어졌고, 3년째 노사협상이 타결되지 않아 파업과 조업이 반복돼 온 고질적인 사업장이었다.

쌍마자동차의 경역혁신과 노사 간의 새로운 모델을 삼송자동차에서 얼마나 잘 접목시키며 완성하느냐 하는 과제가 또 한 번 박병태 사장의 어깨를 누르고 심장을 압박해왔다. 박병태는 첫 출근하는 날 승용차 창을 열고 깊은 심호흡을 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 줄 모른다더니 때 삼송자동차를 두고 하는 말이네

쌍마자동차 사태 해결 후 정부 여당으로부터 정계에 와서 노동부 일을 좀 맡아달라는 연락이 왔지만, 박병태는 하나 더 해결하고 나서 그때 다시 연락하자고 발걸음을 돌렸다.

전화연락을 준 쪽에서 VIP께서 기대가 크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나보고 변태 같다고 했지자식들이 말이야 지들 살려줬더니 뭐어? 변태?에이 아버지는 왜 하필 이름을 병태라고 지어가지고 에이그리고 나는 정계 진출 따윈 안중에도 없소

드디어 삼송자동차 울타리 모서리를 돌아서 정문 입구를 찾았다. 정문 양 옆의 담장엔 울긋불긋 붉은 장미가 화려하게 피며 덩굴이 힘차게 담장을 넘기고 있었다. 그 옆엔 자극적인 구호로 도배된 플랭카드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장미가 아름답긴 하지만 가시가 아주 지독하지여기도 만만치 않겠는데여기도 금속노조잖아어휴 애들 밥 떠먹여 주기 힘들다 정말

정문 앞엔 늘 자주 듣던 노동가 소리와 함께 그 자극적인 나팔 소리가 크게 울리며 박병태 사장을 환영하고 있다.

빰빠밤빰빠밤빠빠바바밤빠바바밤

본관 승용차에서 내리는 박병태의 왼손엔 사계절 내내 들고 다니던 바바리코트가 들려있다. 중요한 협상장에 갈 땐 전투현장에 가는 장수처럼 언제나 그 바바리코트를 걸치고 아침 일찍 비장하게 발걸음을 떼었다. 신임 사장 이·취임식이 있는 오늘도 마찬가지다. 울타리를 힘차게 넘고 있는 장미가 유난히도 붉다.

 

 

 

 

 

예시원(1966년생) : ·소설·문학평론가 / 마산 창신중·고등학교 32/ 산업체 근로자로 32년간 재직 중 /

소설집 토영 통구미 아재〉〈위험한 개꿈/ 평론집달빛 속의 〉〈화채 한 그릇의 이야기/

산청문인협회, 경남소설가협회 회원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