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배우 / 홍채희
그의 열 손가락 끝에선 파도가 피어났다. 그의 두 눈 안에선 폭죽이 일렁였다. 그가 조명을 가리키자, 곧 그것은 해가 되어 떠오른다. 걸터 앉은 플라스틱 기둥 위, 그의 발 밑은 온통 잔딧빛이다.
걸음을 뗀다. 또르륵. 또르륵. 청아한 구두굽 소리가 귓바퀴를 타고 키득거린다. 온 무대를 잠식시키는 그의 호흡, 팔다리, 고갯짓, 알 수 없는 춤선. 그는 더 이상 배우가 아니었다. 바람이 인사를 건네는 색색깔의 천, 만 가지 빛으로 너울거리는 반사광 속에, 그는 더 이상 배우가 아니었다.
별이 참, 아름답구나. 흩어내린 목소리가 가슴께에 꽂힌다. 그가, 피아니스트가, 뒤를 돌아본다. 그곳엔 내가 앉아있다. 피아니스트는 웃는다. 그리고 한바탕 노래를 한다. 그는 더 이상 배우가 아니었다. 나 또한 관객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인물의 성현이었다.
경쾌한 발가락 끝으로 그리는 그림은, 마치 하나의 동화. 모두가 숨을 삼켰다. 모두가 심장을 떨어댔다. 모두가 그만을 바라보았다. 절정을 향해 치닫는,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박자.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태양빛 색소폰 소리가 무대를 찢고 뿜어져나온 순간. 나는 튕겨져 나온다. 그리고 암전된 세상 속에 앉았다.
극의 종막. 커튼이 내려온다.
극의 종막. 나는 다시 관객이 되었다.
♣ 홍채희 대전외국어고등학교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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