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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의 반란 / 장시백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3/04/18 [05:33]

못난이의 반란 / 장시백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3/04/18 [05:33]

못난이의 반란 

 

 

준수는 산부인과 복도에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창밖으로 보이는 몇 개 남지 않은 노란 은행잎을 바라보며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먼저 스스럼없이 말이 잘 통하는 여동생, 그다음은 위로를 받을만한 형, 그리고 의무감으로 장모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렸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을 때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울음을 터트렸다.

 

어떡해요, 죽을지도 모른대요.”

 

준수는 말을 잇지 못하고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고, 준수의 어머니는 도대체 아닌 밤중에 무슨 영문이냐고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산모나 아기가 잘못될 수도 있대요.”

 

이놈아! 그만 울고 별일 없을 거니까 진정하고 있어.”

 

어머니와의 통화를 끝내고 나서도 불안함과 걱정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계속 울어대고 있을 때 준수를 향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호자분!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산모와 아기가 무사하다는 간호사의 말을 듣고 준수는 흐느끼던 울음을 그쳤고, 아무런 소리도 없이 눈물을 훔쳐냈다.

 

 

죄송하지만, 아기와 산모를 바로 보여드릴 수는 없어요. 좀 쉬고 계시면 연락드릴게요.”

 

준수는 규칙적으로 흐르는 시간이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날이 밝아지자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이 병원으로 온다는 연락을 받았고, 산부인과에서도 산모와 아기를 보러와도 된다는 연락이 왔다. 병원으로 향하는 준수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우면서도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는 설렘을 감추지 못해 마음이 들떠 있었다.

 

어디로 가면 되죠?”

 

“501호에 가시면 산모가 있고요, 아기는 면회시간에 산모와 함께 보러 나오세요.”

 

준수는 아내를 보자마자 두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많이 아파? 이제 괜찮을 거야! 내 머리 좀 봐, 어제 자기가 쥐어뜯어서 몇 가닥 안 남았지? 하하하.”

 

제발 웃기지 마, 웃으면 아프단 말이야. 근데, 우리 아기 예쁘겠지?”

 

그럼, 아빠 이름이 준수니까 준수하게 예쁠 거야.”

 

 

제발, 웃기지 말라고.”

 

준수와 준수의 아내는 아기가 딸이라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산부인과에서 초음파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준수는 의사에게 아들인지 딸인지를 물었는데 의사는 말해줄 수 없다고 했다. 준수는 아기가 딸일 거라고 짐작해왔으므로 의사에게, 집에 가는 길에 빨간색 아기 옷과 미미인형을 사 가려는데 괜찮겠죠? 라고 물었더니 의사는 밝게 웃으며 그러라고 했었다.

 

 

아기를 면회할 시간이 다가오자 어머니와 가족들이 도착했다.

 

 

이놈아! 내가 뭐랬어, 별일 없을 거라고 했지! 도대체 왜 그렇게 사람을 놀라게 해?”

 

어머니가 나무라며 묻자 준수가 설명했다. 산모의 자궁이 좁아서 자연분만을 하면 아기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어 위험하고, 수술하게 되면 한밤중에는 혈액 조달 문제로 수혈할 수가 없어서 산모가 위험하다는 의사의 말과, 다행스럽게 수혈할 혈액이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확보되어 제때 수술을 할 수 있었던 상황을 자세히 말해주었다.

 

아기 보러 갈 시간이 다 되었네.”

 

신생아실 유리 벽 너머로 간호사가 아기를 안고 가족들에게 보여주었다. 준수는 아내의 한 손을 꼭 잡고 아기를 바라보며 새 생명의 신비로움을 보고 감탄했다. 준수가 바라본 아내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저 빨간 입술 좀 봐, 애긴데도 입술이 너무 빨갛고 예뻐! 빨리 안아보고 싶어.”

 

준수 아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면회시간이 끝나자 아기를 본 가족들은 회복실로 돌아왔다. 모두 아기가 아주 예쁘게 생겼다고 했다.

 

아기가 고모를 닮았지?”

 

어머니의 말에 준수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지면서 발끈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아기가 왜 엄마나 아빠를 안 닮고 고모를 닮는단 말씀이세요?”

 

갑자기 화가 난 듯 목소리가 커진 준수의 태도에 모두가 놀랐다. 준수의 아내도 준수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아니, 이 에미가 뭘 잘못했니?”

 

어머니의 물음에 준수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나가버렸고 가족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병원을 뛰쳐나온 준수는 담배를 꺼내 물었고,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십오 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

중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중간고사가 끝나고 일찍 집으로 돌아와 마루에 가방을 던져놓고 방에 들어가자마자 잠이 들었다. 시험공부 하느라 부족했던 잠이 쏟아져 기절하듯 쓰러진 것이었다. 얼마 동안을 잤는지 살짝 잠에서 깨어났는데 방문 너머 마루에서 누군가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고모의 목소리였다. 먼 곳에 살았던 고모라서 집에 자주 오지 않았었는데 허스키하고 특이한 목소리라서 쉽게 기억이 났다. 어머니와 고모의 대화를 자는 척 엿듣고 있던 준수는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고모가 준수의 준수하지 못한 외모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준태는 키도 훤칠하고 인물도 좋은 데다가 공부도 맨날 일등이라며? 준수는 왜 그 모양인지 몰라!”

 

준태는 준수보다 두 살 많은 형이다. 어머니는 고모의 말에 아무런 대꾸가 없는 듯 한동안 고모의 목소리만 들렸다.

 

 

곱슬머리에 눈은 단추 구멍에다가, 광대뼈는 툭 튀어나오고, 공부는 잘해? 삐쩍 말라서 키는 자라기나 할지 모르겠어!”

 

준수는 갑자기 귀를 틀어막았고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이불을 뒤집어쓰고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울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저녁때가 되어 밥 먹으라고 온 가족이 깨웠는데도 준수는 꼼짝도 하지 않고 다음 날 아침까지 잤다.

 

 

준수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달리기하면 꼴찌를 도맡아서 했기 때문에 빨리 달리기는 자신이 없었다. 동네 주변에 코스를 정해놓고 오래달리기를 했다. 그리고 학교에 갈 때 타고 가던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키가 조금은 자랐다. 도장에 나가 무술을 배우기로 했다. 거기서 만나 친해진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항상 하던 말이 있었다.

 

우린 깡다구여, 알았지?”

 

그 친구의 말대로 준수는 열심히 운동해서 힘을 기르고 깡다구로 살아가기로 맘을 먹었다. 그때부터 준수는 힘이 센 친구들에게 쓸데없이 얻어맞는 일이 없었다. 시라소니라는 맘에 쏙 드는 별명도 붙었다. 준수에게도 때가 되니 여자 친구가 생겼다. 예쁘고 성격이 좋아서 남학생들한테 인기가 많았던 여학생을 운 좋게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준수가 듣기에 좋지 않은 소문이 돌았다. 그 여학생이 준수가 다니는 학교의 선배와 사귄다는 소문이 돌았다. 같은 반 친구로부터 소문을 들은 준수는 너무도 황당해서 즉시 여자 친구를 찾아가 따져 물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그 오빠는 키도 크고 너보다 훨씬 잘 생겼어.”

 

그 말 한마디에 준수는 이성을 잃었고 여자 친구의 뺨을 사정없이 갈겨댔다. 마치 성난 황소처럼 날뛰는 준수의 행동에 놀란 그 여학생은 황급히 도망쳤다. 준수는 곧바로 그 선배를 찾아갔다. 그 선배의 아버지가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수학 선생님이었고 학생주임이라는 사실을 준수는 알고 있었다.

 

저랑 사귀고 있다는 거 알고도 그랬죠?”

 

그래서 뭐가 잘못됐냐?”

 

선배의 단 한마디의 말이 끝나자마자 준수의 주먹이 그의 얼굴로 날아갔다.

그리고 준수는 퇴학 처분을 받았다.

 

 

준수는 아기의 이름을 수미라고 지었다. 아내는 이름이 촌스럽고 흔한 이름이라면서 반대했지만, 준수는 자신의 한을 풀어주는 이름이라고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름 그대로 수미는 매우 예뻤다. 동그랗고 맑은 눈, 오뚝한 코, 빨갛고 선명한 입술에 우윳빛 새하얀 피부까지 어디 한군데 나무랄 데가 없었다. 준수는 틈만 나면 아기를 안고 동네 여기저기 다니며 자랑을 해댔다. 그럴 때마다 동네 사람들은 누구를 닮아서 그렇게 예쁘게 생겼느냐고 하며 아빠를 안 닮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그런 말 따위는 준수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예쁜 아기 잘 키우겠다며 일도 열심히 했고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아기 목욕도 직접 시켜주고, 똥 기저귀도 갈아주면서 수미는 똥을 싸도 향기가 좋다고 하며 입으로 물어다가 버리기도 했다. 아내는 이런 남편이, 저런 아빠가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느냐며 친정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틈나는 대로 자랑을 해댔다. 수미는 정말 예쁜 그대로 잘 자랐고 똑똑하고 공부도 잘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

 

 

수미야, 학교에 늦겠다. 요즘 왜 그렇게 맨날 거울 앞에만 붙어있어!”

 

수미는 대학에 들어가고부터 거울을 보고 있는 시간이 매우 길어졌다. 틈만 나면 거울을 보며 요리조리 살피고, 만지고, 주무르고, 얼굴 마사지 기구도 사서 문질러댔다.

 

아빠, 아빠가 보기에는 내 얼굴 어때?”

 

 

어떻기는, 예쁘고 사랑스럽고 귀엽지.”

 

 

아니, 아빠 잘 좀 봐! 이상하지 않아?”

 

그게 무슨 소리야, 너 요즘 도대체 왜 그러니?”

 

못생겼단 말이야, 나 성형수술 할래.”

 

 

수미의 못생겼다는 말과 성형수술을 한다는 말에 준수는 놀라고 황당했다.

 

아니, 너처럼 예쁜 애가 수술할 데가 어디 있다고, 그리고 설령 있다고 해도 수술은 절대로 안 돼!”

 

준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 후로 수미는 준수에게 매일 떼를 쓰며 졸랐고, 준수는 아무리 그래 봤자 소용없으니 제발 그만 좀 하라고 했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수미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수미의 부모는 수미에게 용돈을 넉넉하게 주지 못했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거로 생각했다. 학교를 마치고 나서 야간에는 아르바이트하고 자정이 다 되어서 집에 들어오는 수미를 보고 준수는 마음이 불편했다.

 

, 아빠가 용돈 올려줄 테니 아르바이트 그만두면 안 되겠니?”

 

됐어요.”

 

수미의 짧고 싸늘한 대답에 준수는 얼굴에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는데, 아르바이트하느라 힘들어서 그러겠거니 생각하고 더는 말을 걸지 않았다.

 

 

부장님, 오늘은 평양냉면 어떠세요?”

 

냉면 좋지! 그런데 요즘 냉면값이 너무 올랐어.”

 

냉면을 비싼 돈 주고 먹어도 북한하고 냉전이 끝나는 게 좋지 않겠어?”

 

저 같은 서민은 냉전이고 냉면이고 간에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죠! 그런 건 웃대가리들이 알아서 하는 거고요.”

 

준수는 중소기업의 부장이다. 직장동료와 함께 점심때가 되어 냉면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는데 수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 제발 제 부탁 좀 들어주면 안 돼요?”

 

그래, ! 부탁이 뭔데?”

 

제가 성형수술하려고 돈을 다 모았는데, 병원에 가서 동의를 좀 해주면 안 돼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저녁때 집에 가서 이야기하자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준수는 냉면을 씹는 느낌이 마치 어릴 적에 먹었던 수칡을 씹는듯했다.

 

 

준수는 지하철역에서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수미 또래로 돼 보이는 여대생들이 수다를 떨며 지나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수미보다 예쁜 애는 없다고 생각했다. 젊고 키 큰 청년들, 말끔하게 차려입은 귀티가 흐르는 신사, 몸에 달라붙은 티셔츠를 입은 근육 좋은 남자 등이 준수의 시선을 끌자 준수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빠, 제발 허락해 주세요. 도대체 왜 안 된다고만 해요?”

 

글쎄, 안된다니까!”

 

간절한 눈빛으로 호소하는 수미에게 준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빠! 정말 왜 그래? 내가 왜 그러는지, 왜 그렇게 얼굴을 고치려고 하는지, 내 얘기는 들어보지도 않고 왜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는 건데!”

 

수미도 언성을 높이며 고개를 쳐들고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준수에게 대항했다.

 

그래, 어디 들어나 보자. 어서 이유를 말해 봐!”

 

말해도 어차피 허락 안 할 거잖아.”

 

수미는 그대로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울기는 왜 울어, 말해보라니까!”

 

그래도 계속 울기만 하는 수미를 두고 준수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어디 가려고? 수미 달래서 얘기 좀 들어봐

 

아내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준수는 문을 쾅 닫아버리고 주점으로 갔다.

 

술국에 소주하나 주세요.”

 

소주를 한 잔 마시고 술잔을 내려놓으니 밖에서 주점 안을 살피는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왜 나왔어? 한 잔 먹고 들어갈 건데.”

 

집에서 먹고 애를 좀 달래지 왜 꼭 여기로 나와? 나랑 싸울 때도 그렇고.”

 

화나면 혼자 있는 게 낫지, 더운 데 자기도 시원한 맥주나 한잔해.”

 

그래, 한 잔만 먹고 들어가서 수미랑 잘 얘기 해.”

 

옛날에 자기랑 결혼하기 전의 일이 생각난다.”

 

준수는 아내와 다섯 살 차이가 난다.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준수는 서울에서 막노동하며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체구는 작아도 꾸준히 운동해 와서 그런지 건설 현장에서 질통을 지고 뛰어다니는 모습에 보는 사람들이 모두 놀랬다. 어려서 공부를 제법 했었던 준수였기에 공부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다. 시골에서 힘들게 농사를 짓는 부모에게 손을 내밀지 않고 자수성가하겠다는 결심으로 열심히 일과 공부를 병행했는데, 검정고시에 단번에 합격하고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쉬지 않고 공부를 한 결과 대학에도 무난히 들어갔다. 준수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혼란스러운 시국이었다. 군사정권이 권력을 지키려고 최후의 발악을 하고, 민주화를 향한 국민의 열망이 최고조에 달해서 학생과 시민의 시위가 날로 격해지던 시기였다. 준수도 학생운동에 적극 가담했고 최루탄에 쫓기다가 녹초가 되어 자취방으로 기어들어 오는 날이 계속 이어졌다. 준수의 아내는 그 당시 중학교에 다녔고 준수가 학교 근처에서 세 들어 사는 자취방의 주인집 딸이었다.

 

아이고, 오빠! 또 야? 엄마 걱정하는데 왜 맨날 그래!”

 

현진이 너 엄마한테 말하면 가만 안 둬!”

 

현진은 현철의 여동생이고 현철은 준수와 함께 전투경찰에 쫓겨 집으로 기어들어 온 준수의 친구다.

결국, 군사정권은 국민의 저항에 두 손을 들었고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선언했다.

 

현철아, 바지 하나만 빌려주라.”

 

골라봐, 내가 입고 있는 거 빼고 맘대로 골라서 입어. 넌 다리가 짧아서 걷어야겠지만 하하.”

 

하지 말라 했지! 다리 짧다는 얘기.”

 

, 미안.”

 

현철과 준수는 여대생들과의 미팅을 준비하고 있었다.

 

저는 한준수라고 합니다.”

 

어머, 텔레비전에서 본 것 같아요. 코미디언이시죠?”

 

준수를 마주 보고 앉은 여대생이 농담했고, 그 농담 한마디에 준수는 탁자를 힘껏 내리치며 벌떡 일어섰다. 탁자 위에 있던 컵이 바닥으로 떨어져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흩어졌다. 여대생을 바라보는 준수의 눈매는 더욱 날카로웠다.

 

, 이것들이 또 성질을 건드리네.”

 

여대생들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도망갔다.

 

인마, 그 성질 좀 죽여! 그 정도 농담도 못 참아서 어쩌려고 그래.”

 

미안, 술이나 마시러 가자.”

 

그날 밤 현철과 준수는 술을 코가 삐뚤어지게 마시고 비틀거리며 집에 들어갔다.

 

아이고, 오빠! 또 야? 엄마 걱정하는데 왜 맨날 그래!”

 

 

아이고, 우리 예쁜 현진이 아직도 안 잤네.”

 

현진은 오빠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하며 혀를 끌끌 차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7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현철과 준수는 대학에 다니다가 같이 입대하여 같은 부대에서 군대 생활을 했다. 제대 후에 복학하여 학교도 같이 졸업했다. 현철은 대기업에 취직했고, 준수는 취직하지 못하고 있다가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시골로 내려가 어머니를 도와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취업 준비를 했다.

 

엄마! 됐어요.”

 

준수가 취직되었다. 중소기업이지만 안정된 회사였다.

 

가서 일도 중요하지만 장가갈 생각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너 장가가는 걸 봐야 내가 죽지.”

 

, 엄마.”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현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철이 퇴근 후에 호프집에서 만나자며 만날 장소를 알려주었다. 준수는 회사에서 가까운 곳에 임시로 거처할 고시원을 얻어 놓고 짐을 풀었다. 현철과 약속했던 시간이 다가왔다.

 

 

준수야! 이놈 낯짝은 시커멓게 타고, 농사꾼 다 됐네.”

 

현철은 얼굴이 훤하고 말끔한 양복이 잘 어울렸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뽀얀 얼굴에 단발머리를 하고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날씬한 아가씨가 서 있었다.

 

그래, 대기업에 다니더니 더 멋져졌구나. 그런데 여자 친구니?”

 

, 이놈 봐라.”

 

안녕하세요, 준수오빠!”

 

순간 준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제 알아보겠냐? 하하하.”

 

준수는 한동안 할 말을 잊었다. 그 어리고 개구쟁이 같았던 현진이가 이렇게 멋진 숙녀가 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 했던 것이었다.

 

정신 좀 차려라. 우리 현진이가 오늘 월급날이라서 이 오빠들한테 쏜단다.”

 

현진은 2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관광회사에 들어갔다고 했다.

 

 

현진이 술도 먹니?”

 

그럼요. 저도 이제 어른인 거 모르세요? 호호호.”

 

현진에게 맥주를 따라주는 준수의 손은 떨렸고, 왠지 모르는 긴장감으로 말도 제대로 못 했다.

 

, 이놈 시골에서 농사짓다 오더니 왜 이리 촌스럽냐?”

 

현철의 촌스럽다는 말에 준수는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또 성질 나온다. 그 버릇 아직도 못 고쳤네.”

 

준수는 애써 부릅떴던 눈을 풀었다. 그들은 함께 지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즐거워했고, 현진의 귀엽고 발랄한 애교에 준수는 가끔 넋을 잃고 현진의 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자기야, 옛날 얘기 그만하고 수미한테 가자. 아직도 울고 있을 텐데.”

 

소주 한 병을 비우며 옛이야기를 하던 준수는 아내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들어갔다. 수미의 방에서는 우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방문을 열어보니 이불을 뒤집어쓰고 꼼짝도 하지 않는다.

 

 

수미야! 일어나서 아빠랑 더 얘기하자.”

 

수미가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왜 그렇게 얼굴을 고치려고 하는지 얘기를 해보라고 했다. 이유가 합당하면 허락을 해주겠다고 말했더니 수미가 이유를 털어놓았다. 엄마와 아빠가 모르게 고등학교 때부터 사귀던 남자친구가 있었다고 했다. 키가 크고, 얼굴도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집안도 좋은 친구라고 했다. 그런데 그 남자친구가 맨날 못생겼다고 놀렸는데 장난인 줄 알면서도 자꾸만 그러니까 얼굴에 신경을 쓰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점점 자신의 얼굴에서 콧대가 낮은 것에 대하여 자꾸만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남자친구의 장난스러운 말 때문에 다투었는데 그 문제로 헤어지게 되었다고 했다.

 

아빠, 자신감 없는 얼굴로 더는 살기 싫어. 제발 코만 수술하는 거 허락해 주면 다시는 아빠 속 안 썩일게.”

 

얼굴에 자신이 없다고? 이 아빠가 너 낳고 예쁘다고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자랑하고, 지금까지 너 하나 보고 살아왔는데, 얼굴이 뭐 어떻다고? 그럼 이 아빠는 진작에 죽었어야 했니? 이 볼품없는 몸뚱어리와 얼굴로 가진 것도 없이 깡다구로 살아왔는데, 네가 아빠한테 그런 말을 해? 난 그래도 자신감 하나로 여태 기죽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살아왔고, 네 엄마랑 결혼하려고 목숨도 걸었던 사람이야! 엄마가 나 못생겼다고 싫다고 해서 달리는 자동차로 뛰어들며 엄마의 허락을 받아냈고, 결혼을 반대하는 엄마의 오빠와 가족들을 설득하려고 또 한 번 더 목숨을 걸어야만 했어. 가진 것 없고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멸시를 받아야만 하는 불공평한 세상과도 목숨을 걸고 싸워본 사람이야. 너를 낳고부터는 너 하나에게만 소망을 걸고 어디 한군데 흠집이라도 날까 봐 노심초사했는데, 너 스스로 얼굴에 칼을 대겠다고? 그깟 이유로? 그래, 어디 맘대로 해봐. 다 포기하고 확 죽어버릴 테니까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네 맘대로 살아!”

 

준수는 소리를 치며 일어나 다시 밖으로 뛰쳐나갔다. 수미는 또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기 시작했고 준수의 아내는 가슴을 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간 준수는 집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가서 쭈그리고 앉아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평생을 목숨 걸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자식 때문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구나.”

 

그때 전화기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아내였다.

 

자기야, 한 번만 져주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잖아. 우리 결혼할 때도 부모한테 우리가 이겼잖아. 그러니까 지금은 우리가 져 줘야 할 차례인 것 같아.”

 

좀 더 생각해보고 들어갈 테니 먼저 자고 있어.”

 

전화를 끊고 준수는 다시 주점으로 가서 고민하며 소주잔을 비우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자는 수미를 살펴보고 나서 준수는 출근하려고 지하철을 탔다. 빽빽한 사람들 속에 묻혀서 승강장에서 사람들이 타고 내릴 때마다 그들의 얼굴을 열심히 살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이상한 사람, 반듯하게 생긴 사람, 어린 사람, 늙은 사람, 지저분해 보이는 사람, 말끔한 사람, 그리고 욕심꾸러기 같아 보이는 사람과 착해 보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저들 속에 묻혀 있는 나란 사람은 또 어떠한 모습일까!

 

회사 근처의 마지막 승강장에서 내려 의자에 앉아서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수미야, 방학이니 푹 자고 일어나면 엄마가 없어도 밥은 꼭 챙겨 먹어. 그리고 아빠랑 시간 내서 병원에 가자. 분명히 한 번만이라고 했다. 명심해! 그리고 사람이란 겉으로 보이는 모습보다는 안으로부터 나오는 향기가 아름다워야 해. 올바른 말과 행동, 그리고 품위 있는 모습들이 아름다운 마음에서 뿜어져 나와야만 진정으로 멋진 사람이 되는 거야. 아빠도 좀 더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테니 수미도 곧 어른이 되니까 아름다운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아빠 딸, 사랑해!

 

수미에게 메시지를 보낸 준수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준수는 수미와 함께 강남에 있는 병원으로 갔다. 10층쯤 돼 보이는 높은 건물 전체가 성형외과병원인데 드나드는 손님들을 보니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요즘 성형 관광을 오는 중국인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그 말이 사실임을 입증하듯 여기저기에서 쏼라쏼라하는 소리가 들렸다. 수술을 위한 절차를 밟았다. 여러 장의 종이에 깨알 같은 글씨로 쓰여 있는 동의서 등을 꼼꼼하게 모두 읽어보고 의심이 들거나 잘 모르는 내용이 보일 때마다 병원 직원에게 따져 물었다. 혹시라도 수술이 잘못될 경우를 대비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서 한참을 기다렸다. 점심 먹고 오후 일찍 갔는데 저녁때가 다 되도록 계속 기다려야 했다. 몇 번이고 직원에게 왜 이렇게 늦느냐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대답은 똑같았다. 먼저 하는 수술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대답뿐이었다. 드디어 수미가 수술실로 들어갔다. 준수는 대기실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렸다. 그러면서 스스로 자꾸만 되물었다.

 

! 내가 지금 잘하는 것이냐?”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답이 무엇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두 시간하고도 한참 더 지나고 나니 수술이 끝났다고 회복실로 가라고 했다. 긴장되고 불안한 마음으로 회복실의 문을 열었다. 수미의 얼굴에는 하얀 붕대가 잔뜩 감겨있었고 수미는 마취상태로 잠들어 있었는데 잠든 얼굴에서 무척이나 아파서 괴로워하는 표정을 읽을 수가 있었다. 준수의 마음도 그만큼 아프고 괴로웠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수미가 깨어나길 기다리면서 아까 했던 똑같은 말을 다시 중얼거렸다.

 

! 내가 지금 잘하는 것이냐?”

 

그리고 또 중얼거렸다.

 

!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이건 미친 짓이다.”

 

준수는 후회되었다. 이건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수미가 힘없는 소리로 아빠를 부르며 깨어났다.

 

그래, 아가! 많이 아파?”

 

준수는 수미를 데리고 집으로 갔다. 집에서 수미가 다시 잠들 때까지 기다리며 준수는 아내의 손을 잡고 기도를 했다. 교회를 다녔었던 수미네 가족은 교회를 나가지 않은 지 꽤 오래되었다. 준수와 아내는 계속해서 교회를 다녔던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서로 손을 붙잡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겉모습보다는 우리의 마음을 보신다는 하나님, 우리 수미가 건강하게 잘 회복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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