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시詩를 버릴 것이다 / 정이흔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3/12/25 [15:16]

시詩를 버릴 것이다 / 정이흔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3/12/25 [15:16]

시詩를 버릴 것이다 / 정이흔 

 

 

비 오는 오후에 시詩를 버렸다

 

종량제 쓰레기봉투 안에

비닐 지퍼백에 넣어 주둥이를 밀봉한 채

깊이 쑤셔 박았다

 

그래도 스멀스멀 올라오는 역한 냄새

이래서 쓰레기봉투는 자주 내다 버려야 한다

집안에서 썩어가는 냄새가 진동하기 전에 내다 버려야 한다

 

그나마 맑은 날에는 냄새가 덜하다

아마 시도 계절을 타고

날씨를 타는 모양이다.

 

우울한 가을날 비 오는 오후

나는 쓰레기봉투 안에 

시를 버렸다

 

비가 그치기 전에 서둘러

미처 덜 찬 쓰레기봉투일지라도

아파트 일 층 일반쓰레기 집하장에

내다 버릴 것이다

 

 

 

 

 


▲ 정이흔 시인

한국미술협회 정회원

제21회 시인투데이 작품상 시부문 수상 

짧은 소설 모음 <초여름의 기억>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