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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자(單子) 이야기 / 이덕대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4/01/18 [09:06]

단자(單子) 이야기 / 이덕대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4/01/18 [09:06]

단자(單子) 이야기 / 이덕대

 

                                                          

  전깃불도 없고 석유도 귀했던 시절에는 일찍 저녁을 먹은 후 군불 땐 아랫목이 식을까 봐 무거운 솜이불을 덮은 채 긴긴밤 초저녁잠을 청했다.

  한겨울이 되면 삼시 세끼 외 간식이라야 고구마나, 소금물에 담가 둔 침시, 항아리에 묻어둔 홍시 등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없으면 배추 뿌리나, 굴속에 저장하던 무를 깎아 먹었다.

  다들 낮에는 나무며 길쌈을 하고, 밤이 되면 남자들은 술추렴에 처녀들은 끼리끼리 모여 군밥을 해 먹으며 춥고 긴 겨울밤을 견뎌냈다. 마을 청년들은 동네 사랑방에 모여 놀다가 제사 드는 집에 단자 보낼 궁리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밤이 이슥해지면 글줄깨나 아는 이가 종이쪽지에 떡 한 시루, 술 한 말, 부침개 한 소쿠리, 나물 한 접시 등의 단자를 적으면 제일 나이 어린 이가 단자 심부름을 했다. 심부름꾼은 도깨비 여울물 건너는 걸음으로 제삿집 대문 앞에서 “단자요”를 외치고 물목 단자가 담긴 소쿠리를 마당으로 던졌다.

  주인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마당의 쪽지와 소쿠리를 들고 안으로 들어가 음식을 준비했던 고방이나 부엌에서 쪽지에 적힌 내용을 보고 음식을 준비했다. 단자에 빠진 음식까지 가추가추 담아 대문 앞에 내놓으면 문밖에서 기다리던 심부름꾼이 들고 갔다.

 

  단자놀이는 장유유서를 따져 어른들은 앉아서 구경만 하고 웃고 즐기면서 술과 안주를 얻어먹었다. ‘구경이나 하고 떡이나 얻어먹자’는 말은 전래의 굿 문화나, 단지놀이문화에서 나왔을 것이다.

  다들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에 집안 대소간이 나누기에도 충분하지 않던 제사음식을 마을 사람들과 나누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어느 집인가 제사를 지내면 부침개 부치는 고소한 냄새가 온 마을을 진동하니 곤고했던 머슴살이들이 부잣집 제사를 더 손꼽아 기다렸다.

  추운 날들이 이어지면서 노숙자 동사 소식에 고시촌 난방 거지 이야기까지 도심의 한겨울 풍경은 엄혹하고 씁쓸하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 장기화와 가자지구의 갈등으로 더욱 몸이 움츠려진다. 많이 가진 이들이 스스로 단자 목록을 만들고 가난한 이웃과 나눔 하는 선한 문화를 생각해 보는 아침이다.

 

 

 

▶이덕대

공군사관학교 졸업 및 공군대령 예편

경남일보 칼럼니스트(2018~현재)

김포문학상 수필부문 신인상(2017)

한국수필 신인상(2021)

한국수필 올해의 좋은 수필 10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선정(2023)

한국수필가 협회 및 김포문협 회원

에세이집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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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먼당 2024/01/20 [09:56] 수정 | 삭제
  • 오랜 기억속의 단자 이야기 참 그리움이다 공감하며 잘 보고 갑니다
  • 하늘닭 2024/01/18 [13:47] 수정 | 삭제
  • 유년시절 한겨울에 잠자다가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깨면 형들이나 누나들이 사랑방에 모여앉아 단자 해 온 먹거리들로 파티를 하느라 도란도란 얘기 꽃을 피우던 모습들이 추억되네요 딱 지금 이맘 때 쯤 이었을까? 소중한 추억을 소환해줘서 감사합니다,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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