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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롱불이 걸린 저녁 / 이덕대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4/02/07 [09:55]

호롱불이 걸린 저녁 / 이덕대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4/02/07 [09:55]

호롱불이 걸린 저녁

 

이덕대

 

 

  이제는 먼 기억 속으로 사라진 정겹던 등불을 찾는다. 등불에는 초롱이 있고 호롱도 있다. 두툼한 면실로 만들어진 둥근 심지나 일자 심지에다 아랫면에 커다란 기름통이 달린 남포등도 있었다.

 초롱(提燈)은 옛날부터 선인들이 사용하던, 초를 넣어 불을 밝혀 길을 비추거나 사람의 위치를 알리는 휴대용 등(燈)이다. 결혼 예식이나 도심의 고급 음식점에 걸렸던 청사초롱도 이 초롱에서 왔다. 

 초롱은 네 개 또는 여섯 개, 여덟 개의 각이 져 있으며 천판은 들쇠의 기능을 위해 단단한 배나무로 다른 부분은 가벼운 오동나무로 짜맞췄다.

 내부의 초꽂이는 사각 바탕의 무쇠이며 손잡이는 대나무의 뿌리를 활용하는데 초롱에는 청사를 발랐다.

 

 호롱 또는 등잔(燈盞)은 함석이나 사기로 만들어진 작은 통에 기름을 채우고 무명실이나 한지로 심지를 만들어 불을 붙임으로써 빛을 밝히는 조명등이다.

 호롱이라는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는 없다. 혹 중국이나 서양에서 온 물건이라 호롱(胡籠)이라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추측을 해본다.

 가느다란 철사가 유리병을 둘러싼 호롱은 귀한 물건이었다. 심지를 심하게 올리면 그을음이 금방 유리에 앉았고 지나치게 불꽃을 키우면 높은 열로 인해 유리에 금이 가기도 했다. 

 산골 마을은 해가 짧아 어둑발이 유난히 일찍 내린다. 서쪽 하늘 산마루 저녁노을 걸리면 살쾡이를 무서운 닭들은 서둘러 횃대에 올랐다.

 막차 산모롱이 돌 때쯤이면 먹빛 어둠이 기와집부터 내려앉기 시작하여 굴뚝에 연기 오르는 낮은 초가지붕마저 여지없이 덮었다.

 작은누나는 어둑발 내리기 전 부엌일을 마쳐야 한다며 선반에 얹힌 그릇들을 휘뚜루마뚜루 씻어댔다.  

 

 읍내 장 보러 간 어머니 기다리다 마루 끝에 매달아 놓은 호롱불을 보다가 스르르 잠에 빠졌다. 아랫마을 돌아드는 만돌이굼턱 쯤에서 혹 도깨비라도 만날까 빨리 오라던 걱정은 초저녁 어섯 잠이 죄 데려갔다. 

 개밥바라기 별 등에 업고 30리 장 걸음 나서시며 앞산 여우 울음 무서워도 왜지름 많이 먹는 남포등은 켜지 말고 호롱불만 켜 보꾹에 매달아 두라고 신신당부하셨다.

 애지중지 남포등은 까꼬실댁이 어느 가을밤 타작마당에 빌려 갔던 것을 어렵사리 돌려받아 섣달그믐 밤 켠다고 그을음을 씻고 씻어 무명 보자기에 꽁꽁 싸둔 것이다.

 손가락을 꼽아가며 설을 기다리던 밤, 어머니는 장에서 돌아오실 기미 없고 먼 산 부엉이 나직한 울음소리에 겁먹은 닭들은 부스럭댔다. 바람에 흔들리는 호롱불 탓으로 발가벗고 서있던 늙은 감나무 그림자만 장독대를 휘우듬히 덮었다.

 

 

 

 

▶이덕대

공군사관학교 졸업 및 공군대령 예편

경남일보 칼럼니스트(2018~현재)

김포문학상 수필부문 신인상(2017)

한국수필 신인상(2021)

한국수필 올해의 좋은 수필 10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선정(2023)

한국수필가 협회 및 김포문협 회원

에세이집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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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닭 2024/02/07 [13:52] 수정 | 삭제
  • 세밑의 호롱불도 정겹고 그립지만 여름철 은하수 내린 초저녁 찐 옥수수 먹을 때 걸어두던 호롱불도 추억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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