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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처럼 / 김 정 철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4/02/21 [09:24]

피아노처럼 / 김 정 철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4/02/21 [09:24]

피아노처럼

 

김 정 철

 

 

  카페 창가에 앉아 있다. 한적한 거리가 쓸쓸하게 다가온다. 예보 없이 내리는 비가 우의를 준비 못 한 거리를 온통 적시고 있다.  스산한 느낌의 풍경을 몰고 온 장본인이다. 드문드문 지나가는 사람마다 어두운 우산이 동행하고 있다. 질척한 거리를 걸으니 흠뻑 젖은 신발 속으로 파고드는 축축함이 싫은 표정이다. 긴 바지 자락도 살결에 닿을 때마다 핀잔을 듣느라 정신이 나간 상태다. 커피 향 물씬 풍기는 커피가 놓였다. 

  낯익은 피아노 선율이 차분한 걸음으로 다가와 곁에 앉는다. 눈물샘 둑이 터지고 말았다. 주위에서 힐끗 쳐다보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솟구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가슴속에서 느껴지는 이것 때문이라고 한다면 뭐라 할까! 언제나 하얀 건반은 검은 건반을 검은 건반은 하얀 건반을 시기하지 않는다. 다수의 건반 중 하얀 건반이 더 많다고 검은 건반은 열등감을 표출하지 않는다. 또한 하얀 건반은 결코 검은 건반에게 거들먹거리지도 않는다

  더 많이 더 크게 더 자주. 내가 먼저라며 떼를 쓸 만도 한데 한 번도 다툼이 없다. 여러 소절이 지나가도 한 곡이 다 연주되어도 선택되지 않아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억지를 쓰며 나서려고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재촉하며 심통을 부리지도 않는다. 매번 자기만 소리 내려고 여러 건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을 기피한 적도 없다. 항상 아름다운 화음을 위해 절제된 모습으로 기다린다.  

  공존의 섬세함은 어디서 오는가? 하얀 건반 검은 건반은 서로 험담하지도 않는다. 주어진 질서를 무시하고 돌출 행동으로 고요하고 청결한 음악을 망치는 적이 없다. 자기들이 불협화음을 만들면 수많은 청중들은 거친 소음으로 인식하고 외면하게 된다는 것을. 피아노는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화합을 위해 자신을 돋보이기보다는 외조의 길을 걷는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조화를 꿈꾼다.

  피아노 삶을 닮을 수 있을까? 한결같이 자주 등장하는 건반으로만 살고 싶어 독단적 소리만 쉴새 없이 쏟아내고 있으니. 그것도 모자라서 시기와 질투로 다른 건반의 소리는 작게 만드는 역행도 서슴지 않으니. 간혹 극한 상태까지 치닫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니 안타깝고 속상하다. 아직도 주위를 보고 있으면 증상이 더 심해지고 있다. 지우개로 지워버리고 싶어 하늘 보며 내뱉는 하소연.

  조금 남은 커피를 마시며 진정해 본다. 피아노가 어깨를 토닥여주며 귓속말을 남긴다. 감동과 여운 속에 눈물 나는 얘기들이 많은 곳이니 너무 의기소침하지 말라고 한다. 아직 포기해서는 안 된다며 손을 꽉 잡아주고 있다. 이럴수록 더 마음 강하게 다잡고 거칠어진 관계를 조율해야 한다고 한다. 피아노 건반도 흐트러진 소리가 나면 조율하듯이 우리도 비틀어지는 소리는 바로잡아줘야지 않겠냐며 다독인다. 그래, 아직 병든 나무보다 건강한 나무가 더 많은 곳이니 증상이 더 도지기 전에 치유해야겠다. 창가에 달려드는 햇살이 용기의 깃발처럼 펄럭이고 있다.

 

 

 

 

 

 

▲김 정 철

한국가톨릭문회원

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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