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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외 4편 / 임금남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4/02/25 [20:45]

달력 외 4편 / 임금남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4/02/25 [20:45]

달력

 

 

한 해의 부푼 꿈 안고 

겨울이면 일찌감치 찾아와 

아랫목 차지한 손님 

새 계획표가 저들 손에 들어있다 

 

어떤 달이 우리에게 

휴일을 가장 많이 제공할까

농군들 땀방울 

또록또록 영글어 가는 구월 

열두 번 장미꽃 메시지 보내며 

연휴 안겨준다 

 

옹골졌던 순간도 잠시 

십이월이 성큼성큼 다가오며 

주문하지 않는 나이 한 살 

억지로 떠맡긴다

 

일 년 살아온 영수증 

온몸 덕지덕지 붙여놓고 

한사코 거절해도 반품 없다며 

배짱 내미는 날짜 도둑 

숫자가 없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저들과 동행할 수밖에 

 

 

 

 

 

 

신비함

 

 

어느 날 갑자기 

블록 틈새 날아든 꽃씨 한 알 

척박한 땅 원망하지 않고 

다소 곳 자리 잡아 때가 되니

고운 꽃숭어리 나풀거린다

 

바람이 어루만지고 

햇살이 다듬어 놓은 고운 꽃 

그렇게 온 세상 품고서 

더 이상 또 무얼 바라리 

 

여린 꽃잎마다 

소곤소곤 새어 나온 곱디고운 이야기

한 땀 한 땀 가슴에 수놓아 간직하고 

흰 구름 친구와 끝없는 수다로 

하루해 저문다 

 

 

 

 

 

 

가을 정경

 

 

희디흰 옥양목 한 자락 머리에 이고 

망아지 풀 뜯는 초원 

과수원 쪽문 들어설 즈음 

실물인지 그림인지 곱게 익은 사과 

바쁜 걸음 멈추게 한다

 

과일 따는 아름다운 여인

널따란 챙 모자가

멋스러움 더 한층 끌어 올리며

바라만 봐도 풍성함이 한가득

 

휘어진 가지마다

오늘보다 내일 저울 눈금 올라가고

꽃숭어리처럼 예쁘게

잘 익은 사과 하나 뚝 따

옷섶에 쓱쓱 문질러

한 입 깨무는 맛

가을이 한꺼번에 와삭와삭

 

 

 

 

 

 

세상을 다 가진 해

 

 

늘어진 하루해 야금야금 갉아먹고

해 질 녘에야

서쪽 끄트머리 나타난 해

염치도 수준급

 

이제는 바닷속 구경 나갈 요량으로

알짱거리더니

도도한 배짱 한 짐 지고

용왕 만나러 갈 태세

 

천하 구경에

용궁 나라까지

우리도 저렇게 살 수 없을까

 

 

 

 

 

 

가을이 보낸 메시지

 

 

하루 벌이 오만 원이

머릿속 주판알 굴리는 이 시각

피로에 지쳐 납작 가라앉은 정신력

이불 한쪽 잠재워 놓고

서둘러 집을 나선다

 

새벽 별 온몸 감싸며 응원하고

밝은 달이 앞장서 침침한 시야 등불 되어준다

고생이 주렁주렁 매달린

헐렁한 몸배 바지 사이로

찬바람 한 무더기 스쳐 가며

늦가을 정취 물씬 물들인다

 

오늘의 일당이

땅속에서 임자 찾아 두리번거리던 찰나

날카로운 호미 내려치자

불그레 단장한 깜찍이들

줄줄이 그물에 걸린 어류 떼처럼 따라온 환희

농부 아닌 도시인은 모를 거다

 

엉성한 손끝 하나하나 쌓아놓은 고구마

흥얼 노랫가락 속에 긴 사래 분홍 물들고

산 그림 드리우는 석양빛

할머니 노력이 여기서 마감되는

반가운 시간 

하루 노동이 한치 허리 굽혀 놓은 힘든 일과

어둠 한 짐 떠안은 발걸음 더디기만 하다

 

 

 



▲임금남

- 주요 활동: 아시아서석문학 이사, 광주시인협회 이사, 광주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화순문인협회 회원, 한실문예창착 회원, 문학공간 회원

- 수상 내역: 서석문학 작품상, 포렌컬쳐 목판상, 신정 문인협회 작품상

- 작품집: 제1집 ‘보름달을 삼키다’ 2020년 / 제2집 ‘노을을 품다’, 2021년 / 제3집 ‘나들이 나온 바람’ 2022년 / 제4집 ‘어찌나 예쁜지’ 2023년 / 제5디카시집 ‘기분 좋은날’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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