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방치된 것들 / 강 현

김성미 기자 | 기사입력 2021/10/19 [18:17]

방치된 것들 / 강 현

김성미 기자 | 입력 : 2021/10/19 [18:17]

 

덩그러니 놓인 컨테이너 안에 옆구리 터진 타이어와 새끼고양이와 허리가 잘린 라바콘이 들어 있어요. 녹슨 내벽에서 흘러내리는 잔여물 속에 웅크리고 앉은 저들은 오랜 안부처럼 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기다리고 있죠

 

옆구리 터진 타이어는 새끼 고양이를 어미처럼 품고 있죠. 허리가 잘린 라바콘이 컨테이너의 존치기간을 무심하듯 물어 보죠. 다들 입을 다물고 있지만 저들은 하늘을 유유히 걷던 양떼들을 기억하고 있죠.

간혹, 천년이 지나 새가 되거나 목수가 되거나 양이 된다면 양떼를 몰거나 나무를 베거나 하늘을 날수 있겠죠.

 

늙은 인부가 잊어버리고 간 안전모처럼 방치 되어있는 것들, 그루밍을 좋아하는 것들은 고양이처럼 한낮을 좋아하죠. 어둠의 주름이 환하게 펴지면 굴러도 구르지 못하는 타이어와 땅을 짚어도 일어서지 못하는 라바콘은 고양이처럼 방법을 모색하죠. 도로를 다시 달리고 싶은 옆구리 터진 타이어는 고양이의 다리를 은근히 갖고 싶어 하죠.

 

혹 불도저보다 강한 다리를 갖고 싶은 걸까요,

이왕이면 못이나 나사에도 찔리지 않는 전신갑주면 더 좋겠군요. 속앓이도 걷고 낡은 천막도 걷고 , 오해의 불신도 걷고, 달빛이 쳐놓은 슬픔도 걷고 타이어만의 단단함과 팽팽함으로.

 

허리가 잘린 라바콘은 오늘도 쉬지 않고 신호수를 기다리죠. 저 멀리 깃발이 걸어오고 있죠. 깃발은 신호수일까요 불도저일까요,

컨테이너 등에 직인처럼 찍힌 철거 통지서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어요.

  

♣ 강 현

한국문인협회 시흥지부 회원

소래문학회 회원, 한국사진문학협회 회원

시집 '시간도둑과 달팽이'(문학의 전당, 2015)

  © 김성미 기자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